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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우카 Sep 26. 2020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힘.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筋力)

우리는 아무 의식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듯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도 아니 그것을 살아내는 것에도 힘이 필요합니다. 즉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筋力)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하지만 그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은 쉽게 단기간에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그 근력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쉽게 무너져내리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루하루를 비겁하지 않게 살아낸 그 일상이,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으로 변화됩니다. 즉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지 않으면 새롭게 살아갈 하루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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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부지런히 성실히 살아간다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편한 것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열심히 한다는 것은 많은 음식을 섭취한다고 할지라도 편식으로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고, 우리가 편안해하는 상황만 연출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앗아가고, 눈물샘이 터지고, 혹은 나 자신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힘듬의 순간 또한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막힌 상황들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그때마다 그것을 피해 가기 시작하고, 내가 편한 방법만을 취하게 될 때, 바로 그때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근력은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파괴됨은 우리들의 눈에는 잘 뜨이지 않기에, 그리고 서서히 무너지기에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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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설명하자면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쉽게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주는 것, 그것은 아주 간단히 아이들의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켜 나의 시간을 벌 수 있는 손쉬운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빠르게 흥미롭게 학습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고 그 반복의 일상은 아이들의 사고체계와 생활패턴을 기계 앞에 묶어두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손쉽게 접하게 해 준 학습기기,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는 편리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오히려 많은 역기능을 수반합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옛 방식의 학습방법을 아이들에게 고수하는 것도 꼰대로 몰리고 맙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학습방법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러한 기기의 접근이나 손쉬운 선택과 삶의 비겁함이 주는 결과에 관하여, 즉 우리들이 일상을 살아가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가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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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지금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상의 세계. 일면식도 없는 친구, 혹은 언니 동생의 친인척관계까지 확장되는 그런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가 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과 활동을 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직접적인 관계없이 품위를 유지하며, "체"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온라인의 교류를 통해 인정도 받고, 위로도 받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에 빠져들게 되면 현실에서 맞부딪히는 일상의 문제들을 극복해나갈 일상을 살아갈 근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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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게임을 합니다. 그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수학 문제 하나 푸는 것보다는 덜 힘듭니다. 쉽게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때때로 인심 좋은 프로그램은 사이사이 쉬운 레벨과 획득하기 쉬운 아이템으로 그들의 발을 묶어둡니다. 사이버상의 성취욕은 현실세계에서의 근육의 힘을 점점 약화시키고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조금만 노력해도 얻을 수 있는 고득점의 사이버 세상과 아무리 코피 터지게 노력해도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감은 그들은 사이버상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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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은 녹녹지 않습니다. 직장의 문제, 자녀의 문제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의 자신은 누구에게나 호인으로 인기인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책임지지 않아도 좋은 위로와 격려는 싸워내야 하는 현실과는 다르게 와 닿습니다. 처음의 시작은 기분전환과 사고의 휴지(休止)를 위한 것이었지만 어느새 그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고 일상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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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나 어른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현상들은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부지부식 간에 우리들의 몸이 그렇게 익숙해지고 우리의 삶이 그렇게 젖어버리는 것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사람과 대면해서 그 문제에 부딪히고 관계를 해결해 나가는 것,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실수하고 실패할지라도 끊임없이 마주하는 것. 어리석고 돌아가는 듯해 보여도 나의 편리를 포기하고 찾아 하는 수고로움이 잃어버리지 않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근력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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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아이들이 문제를 대면하는 모습은 바로 어른인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엄마, 아빠인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익숙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며 피하려 하고 편리를 추구하는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과 놀아주기는 잘하지만 대화에는 젬병인 부모가 있습니다. 놀아주는 것은 대화를 위한 입문과정일 뿐 진정한 대화가 아닙니다. 그것이 좋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 속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아이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문제점을 회피하지 않고 맞부딪혀 훈육의 과정으로까지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입니다. 바로 부모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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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이 당신에게는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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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러한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을 기르기 힘듭니다. 일상을 살아내는 근력은 사람과의 상호관계, 사회와의 상호관계를 통해 길러지고 성숙되는 까닭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골몰하여서 자기만을 바라보면 자신의 편리에 따른 선택을 하기 마련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자신의 감정에도 절제가 요구됩니다. 실수와 실패가 허용되는 관계 속에 근력은 자라납니다. 내 자녀의 근력을 길러주고 싶다면 그들의 감정을 먼저 인정해주고 읽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실수와 실패를 감싸줄 수 있어야 하며, 올바른 훈육을 시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다른 이들을 향한 긴 호흡과 함부로, 빠르게 판단하지 않음입니다. 빠른 세상을 살아갑니다. 긴 호흡을 갖기가 참으로 힘든 세대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 바늘을 갖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긴 호흡이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닌 나와 마찰을 일으키는 문제. 그 사람입니다. 속단은 긴 호흡의 숨구멍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힘들지라도 기다려줌의 인내가 우리들이 막닥드린 문제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이며 그 인내가 바로 근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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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내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오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인간으로 우리들은 지음 받았습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살아가도록 우리들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미소로 마주하는 일상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우리들은 부름 받은 것입니다. 지금 나는 내게 일어난 문제들을 어떻게 대면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대면해나가고자 합니까? 손쉬운 방법이나 피하고 싶은 방법이 아니라 정직하게 올곧은 눈으로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 그것을 해결해 나가고자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하루를 살아갈,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을 근력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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