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예호는 시에서 자신은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고 적는다. 그 시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바예호처럼 신이 아픈 날 자신이 창조되어 어딘가 부실하고 불행을 걸머쥐고 살아가가야만 하는 것이 운명처럼 점지된 인간. 그 인간이 자신임을 확인해나가는 삶은 아프고도 슬프다.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강한 까닭에서인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연민이 깊은 까닭에선지 알 수 없으나 비극과 연민은 서로 맞물려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비극. 다른 이들의 아픔에 모른 척하며 살아갈 수 없는 그 연민은 수레바퀴처럼 아귀가 맞다. 비극과 연민의 만남은 그렇다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 개선되지 못하는 서로를 할퀴고 종국에는 서로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실 수밖에 없는 저주.
신이 아픈 날 태어난 사람은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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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잿빛이 바다로 흘러들었던가? 바다가 토한 갯벌이 하늘에 던져졌던가? 하늘도 바다도 잿빛이다. 아니 바다와 하늘은 서로 닮아 있으니 하나가 잿빛이면 또 하나가 잿빛인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너와 나의 불행이 닮아 있듯 말이지. 너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공중에서 흩어진다. 아무리 소리를 높여도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해도 닿지를 않는다. 나의 침묵은 침공하는 모든 소리들을 무력화시키는 그 무엇. 그 무력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눈가의 뜨거운 눈물 한 줄기. 어디에서부터 어긋난 것이 아니라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더 깊이 더 깊이 빠져드는 늪. 너와 나는 마주한 늪이다.
지독한 패러독스. 하늘도 바다도 잿빛 이건만 그것이 품은 것은 온통 초록 벼가 익어가는 논이다. 하늘의 으르렁거림도 바다의 소요스러움도 무력화시키는 초록의 생명력. 너와 나의 비극과 연민이 초록 생명을 품을 수 있다면 지금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질없는 희망. 왜? 난 신이 아픈 날 태어났으니 그런 희망 따위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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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말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바로 저기. 잿빛으로 맞닿은 지평선인지, 수평선인지, 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