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감기를 달고 살았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마치 계절 앓이처럼 감기를 했다. 열이 오르고 목부터 부었다. 침마저 삼키기 어렵게 되면 밥은 넘어가지도 않는다. 엄마는 잔소리처럼 "밥을 먹어야 약을 먹지. 안 먹으면 입원해야 해."를 늘어놓지만 탱탱 부어오른 목으로는 밥 한 톨 삼키기가 어렵다. 열로 늘어져 있는 나를 엄마는 일으켜 앉히고는 파카글라스에 복숭아 통조림을 담아 내민다. 탱탱한 과육에 달콤함이 촘촘히 박힌 복숭아는 정확히 반으로 쪼개져 있다. 큼직하니 보여도 이건 한입에 넣어야 한다. 오물오물 씹으면 미끄렁거리는 감촉과 입안을 홍건히 적셔오는 단물은 밥 한 톨 삼키기 어려웠던 목구멍 열기를 식히며 천천히 넘어간다. 차갑기만 한 복숭아가 뜨거운 목구멍에 넘어갈 때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서 조금씩 붉은 기가 가라앉는다. 아가의 엉덩이 두 짝을 닮은 복숭아는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열기가 빠져나간 내 얼굴도 아가의 엉덩이처럼 해말갛게 사랑스러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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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과육을 다 먹고 나면 그때부터 또 다른 엄마와의 신경전이 벌어지는데 나는 깡통에 들어있는 복숭아 물을 마시고 싶어 하고 엄마는 절대 절대 그 물은 마셔서 안된다고 한다. 나는 왜???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몸에 남은 열기는 그 국물을 마심으로 다 빠져나갈듯하건만 엄마는 단호하다. "복숭아가 상하지 않도록 국물에 약탔다. 마시지 마라." 국물에 약을 탔다면 복숭아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지금이야 충분히 그것이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알지만 난 엄마 말을 철떡 같이 믿고 갑자기 겁을 먹었다. 하지만 금기시하면 할수록 그 달콤한 국물 한 모금을 향한 욕망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낳기도 했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난 깡통을 입에 대고 국물을 마신 날 날카로운 깡통에 입을 베이고 말았던 적이 있다.(지금이야 따개로 뚜껑 따듯이 당기면 되지만 그때는 깡통 따는 도구로 꽤나 힘들게 돌려 따야 했다.).
신기하게도 복숭아 깡통 하나면 퉁퉁 부은 목이 가라앉고 밤새 오르내렸던 열도 안정적으로 잡혔다. 유복한 가정이었음에도 그 시절 그것은 귀한 것이었고, 언니 오빠 모르게 은밀히 모두가 잠든 한 밤의 파티. 아픈 나에게만 허락된 엄마의 비책은 계절마다 감기를 달고 사는 내게 줄 수 있는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백신 2차 접종으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밤을 보냈다. 오전 내내 가쁜 숨과 관절 저림을 느끼며 타이레놀과 함께 누워있었다. 몸의 열기와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손으로 느낄 때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나이 50이 넘어도 아프면 엄마가 보고 싶다. 외출한 남편에게 부탁한 복숭아 통조림을 까서 먹노라니 괜스레 울컥해져 자주 눈을 깜박거렸다. 열이 오르고 아플 때 그렇게 잘 넘어가던 복숭아가 오늘은 왜이다지도 아프게 목젖을 건드리며 넘어가는 것일까? 아픈 날에는 누구나 엄마가 보고 싶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