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공부하기에 관한 생각
컴퓨터 끄고 공부해야지
PC방이 활성화됐던 학창 시절, 온라인 게임보다 PC게임을 많이 했던 15세 변모 군은 저녁 5시에 윈도 화면으로 실행하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를 켜고 천하통일을 하기 위해 식량을 끌어모으고 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저녁 5시, 6시에 TV 앞에서 애니메이션을 봤었는데 어느 순간 TV 대신 컴퓨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이내 어머니의 외침이 들린다.
"컴퓨터 끄고 공부해야지. 밥 차려놨으니 빨리 끄고 나와"
밥이건, 공부건 어쨌든 어머니는 저 녀석이 컴퓨터를 끄고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외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공부의 적이었다. 도트 문양이 뚜렷했던 컴퓨터 게임의 화면은 VR이나 모바일로 가능해졌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되었고, 사양까지 높아졌다. 누가 봐도 만화 캐릭터 같던 게임 속 등장인물들은 실존인물처럼, 영화 주인공처럼 현실감이 넘치게 바뀌었다.
기술 발전은 다른 것도 게임처럼 바꿨다. 바로 지식의 습득이다. 유튜브를 필두로 한 여러 플랫폼의 등장은 지식 습득의 경로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2021년, 선생님께 직접 배우거나 책을 통해 배우던 과거의 방식은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물론 독서와 강의를 통한 학습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고 그 방법이 유일하지는 않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경향이 강해 진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공부 방법도 바꾸었다. 가르치는 걸 업으로 하는 이들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았다. 재밌고 흡입력 있게 강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되기 시작했다. 물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교수와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강사는 다른 영역이지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이를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대면 시대로 돌입하며 이러한 경향은 더 강해지고 있다. 훌륭한 연구 성과와 지식을 갖고 있어도 말 주변이 없거나, 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뒤쳐지는 시대가 등장했다.
요즘 책을 읽거나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데 콘텐츠를 습득해야 할 경우, 유튜브와 같은 영상 플랫폼을 이용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역사,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철학 등 인문사회부문부터 과학, 예술, 영화, 운동법도 영상으로 공부하고 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에게 이 방법은 꽤 유용하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 덩치가 있다 보니 책을 읽는 게 힘들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사람이 없을 때 읽거나 아예 전동차 한쪽 끝에 서서 본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영상을 보며 공부하는 회사원을 보게 됐다. 긴 탄식을 내뱉으며 볼만한 채널을 뒤지기 시작한 때도 그즈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식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각 분야를 정해두고 대표 채널을 구독한 후, 해당 채널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채널을 고르는 이유나 노하우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때마다 두 가지를 강조한다. '영상의 군더더기가 없을 것', '내용이 신뢰할만한 것'이다. 가짜 뉴스가 넘치는 시대에 콘텐츠와 지식 역시 '가짜'가 넘치고 있다. 과학의 이름을 빌린 '유사과학'도 많고, 논리와 철학의 가면을 쓴 날조된 사실도 많다. 일부 유튜버들은 가짜를 진짜로 둔갑해 팔기도 한다.
그래서 정당한 근거가 없는 비판, 논문이나 신용할만한 저서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정보, 어떠한 사실을 자기 마음대로 각색, 왜곡하는 콘텐츠, 무턱대고 비난만 하는 채널은 거르는 편이다. 이 글에서는 굳이 채널을 추천하고 싶진 않다. 각자 기호에 맞는 정보와 채널이 있을 텐데, 어떤 채널은 좋고 그렇지 않은 채널은 그르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지식 콘텐츠 채널은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옛 채널이 새 채널보다 반드시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수많은 강의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거리두기로 대부분 온라인 강의로 전환됐다. 소위 필드에서 이름 꽤나 날렸다는 사람들이 유튜브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강의 콘텐츠를 유튜브나 영상에 맞게 편집해 올려 새로운 활로를 뚫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분야 자체가 굉장히 넓어지고 있다. 물론 모든 노하우가 온라인에 있진 않다. 중요한 건 돈을 주고 파는 사람이 더 많다. 작년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클래스 101이나 탈잉과 같은 사이트는 취미의 영역이었던 부분도 강의와 지식 콘텐츠로 흡수해 판매하고 있다. 브런치를 통해 책을 출간한 작가들도 새로운 영역의 글쓰기를 개척하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모든 분야를 영상으로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전문 지식과 정보는 물론, 성교육, 계급 문화, 매너와 연애 스킬, 수많은 큐레이션까지 강의하는 채널이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내가 믿을만하다'라고 생각하면 정보를 얻는 건 금세 이뤄질 수 있다. 그렇다고 '영상을 통한 공부가 100% 효과가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영상이 익숙한 세대이지만 공부를 영상으로 했던 세대는 아니어서 그런지 공부는 공부의 영역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세대가 본다면 이런 모습도 꼰대의 고집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문장. 글을 쓰기 전부터 오랫동안 생각했던 난제이기도 했다. 온라인 콘텐츠와 책의 경쟁은 전자책과 인터넷 글쓰기 VS 종이책의 대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두 가지가 구분되어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두 분야가 완전히 나눠져 있다고 보긴 힘들다. 결국 상호보완적이거나 일부분이 겹치는 제로썸의 모양을 하고 있다. 겹치는 부분에선 경쟁이 일어나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서로 돕는 관계로 보인다.
물론 아직까지 책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책을 읽는 인구는 끝없이 줄고 있지만, 누구나 책을 내고 싶어 한다. 이 채널에서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종이책을 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전자책도 좋지만, 뭔가 아쉽다. 개인적으로도 그렇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 공동집필보다는 혼자 쓴 책이 끌리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종이책 자체가 없어지거나 오프라인 콘텐츠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상관없다. 그런 면에서 돈을 주고 직접 구매한 무언가가 눈앞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사람의 형태로 내 앞에 서있는 강사가 강의를 하거나,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보존의 개념에서 종이책은 영원히 남을 테지만, 지식 전달로 보자면 종이책은 비효율적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나무를 자르는 건 물론이고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한다.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은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시장도 마찬가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겠지만,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광고 시장만 하더라도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을 넘어서고 있다(강의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온라인 콘텐츠가 책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생각하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책이 갖는 기능은 온라인 콘텐츠가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다만 책이 가지는 권위는 넘을 수 없다. 지금도 수많은 온라인 콘텐츠와 이를 바탕으로 한 스타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도 종이책을 내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수천 년을 이어온 권위를 무너뜨리기에는 온라인 콘텐츠가 쌓아온 권위가 아직 부족하다.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다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어느 하나만 가지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시기는 지났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말한다면 온라인을 고르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이 3차 세계대전으로 석기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온라인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고 그에 따르는 돈도 더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