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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하게 Feb 19. 2021

10. 글 쓰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작고 소중한 '인세' 10만 원

글쓰기와 관련된 첫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지하철 역 쓰레기통에서, 새 거 같은 노트를 한 권 주었다. (조금 자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쓸모 있는' 물건들을 주어 오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 시를 썼는데, 정확한 워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별'에 대한 내용의 짧은 시였다. 그리고 이어서 아마도 장래희망이 시 쓰는 사람이라고 말해서 담임 선생님에게 선물 받은 시집에는, 직접 그림을 그리고 동시를 적는 페이지가 부록으로 있었는데, 텅 빈 페이지 아래쪽에는 내가 유일하게 그릴 줄 알았던 튤립을 잔뜩 그렸고, 오른쪽 위 귀퉁이에는 눈코입이 있는 해님을 그리고, 해님이 꽃밭에 꽃이 몇 송이 있는지 세어보다가 잠들었다는 내용의 귀여운 시를 꽃과 해 사이의 빈 공간에 쓴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 후 중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다른 건 모르겠지만, 중국의 시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거 같다. 학교 수업과 관련 없이 당시 가장 즐겨 읽었던 책은 일본의 다양한 공포 소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링>을 비롯해서 각종 추리 소설까지, 정말 푹 빠져서 무서워하면서도 너무 재밌어서 닥치는 대로 읽은 기억이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 바로 '사랑'을 알게 되면서 소설광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는 그 방학에 벌써 절절한 짝사랑을 하느라 눈물 콧물 잔뜩 쏟았고, 중학생 1일 차에 갑자기 같은 반 친구에게 고백받고 '이게 뭐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자꾸 그 사람이 신경 쓰이면서 인생 두 번째 짝사랑이 바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 친구가 다시 고백해오는 덕분에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사랑과는 사귀다 헤어지다를 반복하고, 무려 중국-미국, 호주 롱디까지 거쳐서 고3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에 벌써 연애하면 이 세상 사랑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거 같아지는 마법을 겪었고, 당시 유행했던 귀여니의 소설을 비롯해서, 세상의 온갖 사랑이야기를 밤새가며 읽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인풋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아웃풋이 나온다는 게 나에게는 해당되었는데, 당시 소설 필사, 가사 받아 적기로 시작된 나의 취미는, 수업 시간에 작사하기, 공부하는 척하고 소설 쓰기로 이어졌고, 작가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중학생의 신분으로 실패를 거듭 맛보면서까지도 주구장창 출판사에 투고도 해봤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나의 글은 '중2병' 가득한 글이지만,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감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내가 말하는 감성이란 세상의 온갖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을 눈으로 좇고, 마음으로 간직하고 싶고, 스치는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일렁이는 그런 느낌. 다만 지금은 이런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내놓고 풀어두는 대신, 조금은 감싸 안은 채, 너무 날것으로 세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이따금씩 세심하게 포장을 하는 이성이 조금 더 깃들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사랑' 덕분에 중고등학교를 자연스럽게 '문학소녀'로 보내는 바람에,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에도 고민 없이 영문과를 골랐고, 지금까지 후회 없는 선택이다. 대학생의 나는 서점에 가면 소설 코너에서 교과서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너무나 행복했고, 존 키츠, TS 엘리엇의 시, 르네상스, 낭만주의 문학, 20년대 미국 배경의 영화들, 음악, 미술작품과 이와 관련된 문학들, 수업 시간이 꼭 박물관에서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거 같았고, 좋아하는 영화의 시네톡을 듣는 거 같아서 너무 행복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졸업할 무렵, 문과생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생각해본 나의 전공의 '무용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남들보다 '생계', '돈'이라는 단어들이 가지는 의미를 늦게 알게 된 편인데, 이런 단어들이 조금씩 와 닿을 무렵,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또 마음껏 느끼는 것은 어쩌면 예술이자 사치, 아니면 적어도 취미의 영역이고, 내가 건물주나 금수저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 사회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싶고,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은지 고민해볼 새도 없이, 첫 직장을 구할 무렵 구직 필터에 '연봉' 딱하나 만 걸고 내가 원하는 연봉 조건에서 가장 빨리 합격한 곳으로 갔는데 광고 대행사였다. 그래서 업무 중에 카피를 쓰는 일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안의 작가 세포가 깨어나는 걸 보면서 스스로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화장품의 검색 광고 카피였는데, 제한된 글자 수에 맞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예쁘게 담아야 하는 게 시 쓰는 것과 비슷해서 아주 즐겁게 작업했다. (중국어와 영어라서 자랑할 수 없는 게 아쉽다.) 이거 말고 다른 일화가 있다면, 당시 회사가 강남구청역이랑 연결된 빌딩에 있었는데, 마침 강남구청역에 꽤 큰 도서관이 있어서, 한동안 점심시간마다 가서 책 읽었던 기억.


복합적인 이유로 1년 4개월 만에 퇴사한 후, 4개월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그때 공채로 지원한 몇 군데에 떨어지고 문득 '출판사를 차려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거의 유일하게 꾸준히 좋아했던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전 직장에서 마케터로 일하면서 포토샵도 꽤 잘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책 디자인은 내가 하고, 작가를 섭외하지 못하면 내가 번역서를 내든, 직접 쓰든 하면 될 것만 같았다.


출판사를 차리려면 우선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았는데, 방법을 찾아보니 두 가지 정도의 경로를 찾게 되었는데, 1번은 국가에서 국비로 운영하는 출판 스쿨에서 1년 동안 관련 과목들을 배우는 거였고, 2번은 바로 출판사에 취업하기. 직장 생활의 쓴맛을 맛본 당시의 나로서는 1번 옵션이 조금 더 끌렸지만, 현실을 생각해서 우선 출판사 몇 군데를 지원했는데, 역시 탈락만 계속하다가, 생각지도 않게 지원도 안 했는데, 취업 사이트에 걸어 놓은 이력서를 보고 먼저 연락 온 출판사가 생겨서 운 좋게 2번 옵션을 실행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바로 출판사에 취업한 건 백번 천 번 잘한 일인 게, 책을 만드는 스킬은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거지만, 팔리는 책을 보는 눈, 독자와 시장을 파악하는 일은 출판계에 몸을 담그면서 몸소 겪고, 수많은 실패와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체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의 생활도 2년 8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지만, 다른 것보다 '좋은 책', '팔리는 콘텐츠'를 보는 눈이 생긴 게 가장 큰 소득이다.


덕분에 나의 이야기 중에서도, 팔릴만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는데, 바로 지난 글에 썼던 '원데이 클래스'를 부업으로 하는 경험이었다. 당시 퍼블리 빠순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퍼블리에 '투고'를 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바로 통과되어 퍼블리에서 글 두 편이랑, 영상 강의까지 찍을 수 있게 되었고, 브런치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퍼블리에서 처음으로 함께하자는 메일을 받은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정말 너무 기분 좋고 가슴 벅찬 설렘을 느낀 나의 2020년 베스트 순간 1위다!


https://publy.co/set/869


그러던 와중 또 브런치에서 돌아다니다가, 한 전시 관련 플랫폼에서 대학생 에디터를 뽑는다는 글을 보게 되었고, 학교를 졸업한지는 한참 되었지만, 관심 분야여서 홀린 듯 지원해서 한 달에 50만 원씩 받으면서 일주일에 글 두 편씩 쓰는 생활을 4개월 동안 이어갔다. 작년엔 회사를 다니면서 참 이것저것 많이 했는 데 말이야.


여기서 잠깐 수입 공개 타임을 가져보자면, 영상 강의 제외하고, 순수하게 퍼블리에서 쓴 글로 지금까지 얻은 수입은 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125만 원이니깐 한 달에 1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영상이 오히려 이거보다 더 많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봐왔던 작가들이 받는 인세가 생각보다도 적어서 현실을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내가 쓰고 싶었던 내 이야기를 썼고, 미약하지만 조금의 브랜딩 효과도 있고, 또 한 번 써두면 작게라도 돈이 들어오니 퍼블리에 도전한 건 정말 아주 만족스럽다. 정산일인 매달 10일마다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정산 사이트에 접속하는 설렘도 있다.


매달 10만 원이 다소 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또 단순하게 계산하면 글 10개를 쓰면 이게 100만 원이 되고, 100개를 쓰면 1,000만 원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글쓰기도 역시 유튜버와 마찬가지로, 잘하는 거 못지않게 중요한 게 꾸준함과 성실함이거늘, 현실의 나는 목표했던 브런치 글 주 2회 연재는커녕 거의 월 단위로 글을 찔끔찔끔 쓰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다.


사실 지금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반 백수로 지내고 있어서 시간도 정말 많은데, 정작 글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안 써진다. 피곤하면 늦잠 자고, 추우면 밖에 안 나가도 되는 지금의 삶이 너무 좋은데, 게으름은 더 큰 게으름을 낳을 뿐이고,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매일 자발적으로 쓰는 삶은 나에겐 절대 없을 거 같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글 쓰는 일이 뭐가 있을지 조금씩 찾아보는 중이다. 엄청 좋아하는 <부엌> 매거진에서 풀타임 에디터를 뽑는다는 글을 보고 지원할 뻔하기도 했는데, 아직 풀타임으로 다시 일할 마음에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도 관심 갖던 매거진 <컨셉진>에서 객원 에디터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고, 이번 주는 요즘 즐겨보는 <폴인>에 상시 에디터 풀에 등록하려고 노션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만들어 보았다. 얼른 좀 더 고치고 지원서도 써야지. 

https://www.notion.so/444d13a2dc504d7ebcafcf06917f04e7


올해도 벌써 2월도 다 지나가고 있다. 원래 삶이 무계획에 새해 목표 같은 것도 잘 세우지 않는 편인데, 올해는 딱 한 가지, '글을 많이 써보자!'를 목표로 삼았거늘,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실천할 수 있길. 또 벌써 조금 늦어 버렸지만, 나에게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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