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팔 할은 여행이 키웠다 @강릉, 부산
코로나 이후 확실히 예전보다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다. 그동안 여행은 무조건 해외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국내 여행을 다니며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생각하는 국내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지금 살고 있는 서울 말고 여기 와서 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최근 2주 연속 주말을 이용해 2박 3일로 강릉과 부산을 각각 다녀왔다. 그동안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번에 내가 단순히 바다를 좋아한다기보다, 바다와 함께하는 삶을 꽤 간절히 '열망'한다는 걸 깨달았다. 왜 수많은 서퍼들이 안정적인 직장과 도시 생활을 포기하고, 해변에 서핑 샵을 차려 바다와 함께하는 삶을 택하고 있는지도 갑자기 너무 이해가 되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물고기가 된 듯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고, 몇십 번, 몇 백번이고 파도를 보고 느끼고 온 날 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눈앞에 파도가 끊임없이 아른거려서 파도 속에서 잠드는 그 황홀함이란. 여름엔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바다에 들어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6월에 벌써 두 번을 다녀오니 매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과 부산에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바다 근처에 살 수는 없을까?
이렇게 최근의 여행에서 느낀 건,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점점 더 잘 알게 된다는 거. 그리고 여행을 가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자유가 일상에서보다 조금 더 주어지기 때문에, 내가 뭘 원하는지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2년 전 수영에 푹 빠진 시기가 있었는데, 새벽 수영을 마치고 출근하는 통근버스에서, 퇴사하고 매일 아침 수영하고, 회사가 아닌 집이나 작업실로 가서 조금 쉬었다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커피 마시면서 책 보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 했다. 그리고 작년 10월 퇴사 후, 정말로 내가 꿈꾸던 삶 그대로 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일단 수영 강습이 아닌 자유수영으로는 모닝 수영을 꼭 가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지 않았고, 수영장 가서도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많지만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백수는 매일 맛있는 점심을 사 먹기가 부담스러웠다. 당장 내 진로가 고민되니 전에는 그렇게 좋아하고 틈틈이 읽으려고 노력했던 책들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이렇게 '여유로운' 하루를 마치면 '오늘도 행복했다!'가 아닌 '오늘도 낭비한 거 같아ㅜㅜ'의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번 6월의 여행을 통해 내가 깨달은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를 정리해본다:
07:00 아침 햇살에 자연스럽게 눈을 뜬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튼다.
07:30 침대에서 스트레칭 하기
08:00 커피나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독서 타임
(일정이 빠듯한 일이 있다면 이때 하자!)
09:00 바다에 들어가 파도와 수영을 즐긴다.
(바다에 못 들어간다면 등산을 가자!)
11:00 식당이 붐비기 전, 조금 이른 점심을 먹는다.
(집에서 예쁘게 차려 먹어도 좋겠다!)
12:00 피곤하다면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고,
컨디션이 괜찮다면 바로 카페에 간다.
13:00 집중해서 일을 한다.
19:00 저녁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는다. (사랑해요 alcohol♥)
*상황에 따라 수영과 일의 스케줄을 바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수영 가는 것도 좋겠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백수로 6개월이나 살아보기 전엔 몰랐다, 일, 또는 성취감의 중요성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루하루 일 없이 한량처럼 살면, (적어도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출근하는 건 싫다. 지금 하루 4시간 출근하는데, 회사에서 하는 일은 오히려 아주 편하고 힘든 일도 없고 사람들도 좋고 스트레스 전혀 없는데, 나는 주 5일 특정한 곳으로 내가 가야 한다는 자체가 싫다. 그리고 평일 여행의 여유로움, 절대 포기할 수 없어! 그래서 비록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더라도, 몸이라도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좋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편이고,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나는 내가 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최근까지도 몰랐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먹는 걸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맛있는 걸 먹을수록 혼자 밥 먹는 건 괜찮다. 왜냐면 상대에 대한 신경을 덜 쓰는만큼 음식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자면,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것보다 빈속으로 있다가 첫끼로 이른 점심을 먹는 걸 좋아한다. 이때 건강한 재료로 만든 유럽식 식단이 나의 최애 메뉴다.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 치즈 등 메뉴에 와인이나 맥주 1잔이 점심 식사로 딱 좋다. 2순위는 스시나 일본 가정식, 라멘 등 일본요리. 마찬가지로 생맥 한잔은 필수.
저녁은 오히려 한식도 좋고, 동남아 음식도 좋고, 점심메뉴 그대로 먹어도 좋고 상관없을 거 같다! 다만 다음날 일찍 일정이 있거나, 중요한 마감이 없다면 술은 음식과 어울리는 걸로 아주 조금 취할 때까지 마시고 싶다. 헷.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강습 한정이다. 자유수영으로 수영장을 계속 돌고 있자면 정말 동기부여도 하나도 안 되고 너무 재미없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파도, 물속을 보는 재미가 있는 바다 수영이나,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고, 풍경이 있는 등산이 훨씬 좋다. 바다 근처에 정말 살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면 산 근처에라도 살아야지! (헬스장 1년권 끊어놓고 몇 번 못 가는 사람 ㅠㅠ 흑....)
매일, 아니 적어도 한 달에 일주일은 이렇게 살려면, 직장인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니면 재택근무가 자유로운 직장을 찾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일단 할 수 있는 한, 프리랜서로 월 500만원은 하반기 내로 찍어봐야지 :) 그리고 내년은 월 천....? ㅋㅋㅋㅋ
무언가를 원한다면, 동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해내는 거다!(ง •̀_•́) 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