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하게 Jan 17. 2021

갠지스강에서 죽음을

나의 팔 할은 여행이 키웠다 @인도, 바라나시

혼자 하는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성년 이후에는 혼자 살던 기간이 꽤 길었음에도, 낯선 곳에서의 자유는 일상에서의 자유와는 또 다르게, 한 번 중독되면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로 달콤한 종류의 그 무언가였다.


달콤한 자유와 더불어, 여행,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이 지금의 나의 팔 할은 키운 거 같은 기분인데, 이 여행들은 매번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 주로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아래의 능력이나 생각들이 이런 여행들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 내 몸과 내 짐과 내 일정은 내가 알아서 잘 챙기기.

- 각종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슬기롭고 용감하게 어려운 상황을 해쳐나가기.

- 세상에서 완전히 마음 놓고 믿고 의지해도 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 철저히 혼자인 상태로 잘 사는 사람이 더불어도 잘 산다.

- 내가 무엇에 가장 행복하고 만족감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자주 실행하기.


그래서 앞으로 'N잡' 글만 쓰기 지칠 때, 조금씩 그동안의 여행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쓰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어서 우선은 글도 형식도 아주 산만할 예정 :)


*사진은 전부 직접 찍은 사진들만!




새벽 5시 반, 알람이 울렸다.


일상에서는 출근 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해가며 최대한 늦게 일어나고자 애를 쓰는 날이 많았지만, 여행지에선 설레는 마음 덕분에 알람 한 번에 바로 일어나게 된다. 오늘은 또 어떤 풍경, 어떤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올까? 특히 나는 전날 도착한 바라나시의 알록달록하지만 잔잔한 느낌에 잔뜩 취해서, 여기서 머무는 3일 동안 조금이라도 이 도시를 더 담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피어오르던 상태였다.


전날 오후, 숙소에 짐을 두고 강가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자신의 보트를 타보지 않겠냐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인도 여행 첫 도시인 뉴델리에서 호기심에 한 해나가 시세 대비 20배는 주고 그린 걸 알고 난 후 인터라, 낯선 사람의 제안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비싸지 않은 금액을 듣고 속는 셈 치고 한 번 타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청년의 선한 눈에 나도 무장해제되었다. 


솔직히 당시는 아무 기대도 안 하고 올라탄 보트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 위에서 본 일몰이 생생할 정도로, 당시 그 청년을 따라 보트를 탄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래서 헤어지면서, 보트 청년이 '아침에 보트에서 보는 일출은 더 아름답다'는 한 마디에, 나는 속는 셈 치고 다음날 아침 보트 투어까지 덜컥 예약해버렸다. 같은 루트의 투어였지만, 분명 아름다운 곳일수록, 매 시간마다 매력도 변하기 마련이니깐.

 

어둠이 내린 갠지스 강, 보트들 사이에서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이 잠옷 겸 외출복으로 시장에서 산 코끼리 바지를 입은 채로, 세수랑 양치만 하고, 카메라만 챙겨서 바로 나왔다. 근데 웬걸, 문틈 사이로 비치는 빛이 뭔가 쎄했는데, 6시 전에 나왔는데도 해는 벌써 떠있었다.


강가에 도착해서 6시까지 나오라고 한 보트 청년을 원망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따지면 분명 사람 좋은 웃음으로 '허허 '하면서 순진한 표정으로 '그래서?'라고 할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따지는 대신, 밤에 잠은 잘 잤는지, 오늘도 예약 손님이 많은지, 시시콜콜한 인사말을 건넸다. 무엇보다 강 표면에 일렁이는 금빛 윤슬이 정말 말 그대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서 넋 놓고 한참을 봤다.


갠지스강 금빛 윤슬


넘실거리는 윤슬 사이, 한 없이 평화롭고 한가한 강의 한가운데에서, 저 멀리 화장터가 보였다. 조용히 시신들이 들것에 실려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낯선 이들의 죽음이 왠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바라나시 화장터


'죽음'에 대해서 내가 처음 생각 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엄마의 책장에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를 읽었는데, 책의 한 챕터가 아예 '죽음에 대해서'였던 기억이 있다. 책을 통해 나는 어렴풋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되었고, 알록달록 단순하기만 나의 세계에 처음으로 어둠이 깃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죽어서, 유령처럼 이 세계를 떠돌아다니게 된다면, 난 엄마의 곁을 항상 맴돌기만 할 작정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엄마가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시간에서 1초라도 늦어지면 울기 시작하는 엄마 껌딱지 었다.) 이 생각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그렇게 되어도 엄마는 나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사실에 또 한없이 슬퍼졌다.


7,8살짜리 꼬마가 하루 종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괴로워하면서, 문득문득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숨기고자 화장실이나 서재로 자주 숨었던 기억이. 하루는 저녁을 먹으면서 문득 생각난 '죽음' 키워드에 식탁에서 울어버려서 엄마를 당황시켰지만, 끝내 나의 어두운 생각들은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때부터 20년도 넘게 흐른 지금이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은 말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은 말을 안 하는 거를 넘어서 아예 생각조차 잘 안 한다. 좋게 말하자면 특히 슬픔, 위기, 고난, 역경 등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초연한 상태고, 나쁘게 말하자면 자기 방어 기제가 너무 강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죽음에 대해 비교적 어린 나이 때부터, 많이 생각했던 것에 비해, 살면서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은 아직 많지 않았던 거 같다. 따라서 어쩌면 바라나시에서 먼발치에서 본 이 풍경은, 내 생애 첫 장례식에 참여한 경험 인지도 모르겠다. 나같이 외국인 여행객뿐 아니라, 인도 전역에서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우리 모두 함께, 죽은 자, 그리고 남겨진 가족을 보고 느끼며, 각자의 방식대로 그들과 잠시나마 함께하는 거겠지.


세계 여행자뿐 아니라, 인도 곳곳에서도 이곳을 방문하러 온다고 한다


윤회, 시간, 상대성, 죄, 구원, 이 중 어느 키워드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누군가의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 어떤 사람이 너무 소중해져서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까지 생각해버리는 마음. 이런 마음들은 내 전문이자, 또 만국 공통의 마음, 그리고 사랑이겠지.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