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Feb 10. 2017

집순이에게 여행이란

여행과 일상의 관계

집순이가 여행을?


  집순이여행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가끔 '너같이 하루 종일 집안에 처박혀 있는 애가 그 많은 여행은 어떻게 한 거니?'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사실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 집순이와 여행을 연관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운 좋게도 할 일 없이 일주일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매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작은 방과 화장실이 전부인 원룸을 청소했다. 따듯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차 한잔과 함께 친구들과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보고 싶었던 영국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 했다. 일주일은 금세 지나갔다. 집에만 있어도 할 일은 많았다. 나는 집순이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여행이다. 사실 여행이 내 집순이 생활의 원동력이다. (이렇게 말하니 친구들은 내가 진정한 집순이가 아니라고 했다만...) 평범한 일상에 싫증이나 여행을 계획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특별한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가난한 학생인지라 매일 불편한 침대에 지친 몸을 뉘어야 하고 먼 거리를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며칠 때로는 몇 주를 보내면 문득 일상의 편안함이 그리워진다. 정해진 틀에서 같은 패턴을 그리는 하루가 생각보다 괜찮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평범하던 일상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일상이 여행만큼 특별해지는 경험이다.


일상과 여행


  그렇다면 일상과 여행은 어떻게 다를까? 많은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서류전형에 합격한 대학에서 면접을 보기 위해 엄마와 서울로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면접을 무사히 치르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4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퇴근시간에 가까워지자 지하철은 꽤 붐볐다. 창백한 전등이 지친 얼굴들을 비췄다.


  그러다 갑자기 지하철이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동작대교를 지나는 지하철의 차창 너머로 노을 지는 한강이 펼쳐졌다. 차가운 전등 빛은 온대 간데없고 사방이 따듯한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엄마는 내게 풍경이 참 예쁘다고 속삭이셨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모두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엄마에 귀에 대고 '아무도 노을을 구경하지 않아, 엄마'하고 말하니 엄마가 피식 웃으셨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셨다. "서울 사람들이잖아."


  여행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노을에 대한 기억은 다들 하나쯤 있을 것이다. 매일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해가 여행지에서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노을은 그렇게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해는 우리 집 담벼락에서도, 도서관 창문에서도, 퇴근길 차창 너머에서도 진다. 여행길에서 마주한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행지의 태양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른 태도로 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읽을 때마다 어쩜 저런 통찰을 풀꽃에 빗대어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시다. 여행도 시 속의 풀꽃과 다르지 않다. 여행이 일상보다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관찰하기 때문이다.


 바다나 강이 있는 도시를 여행할 때 종종 두세 시간 동안 해가 지는 것을 감상하곤 한다. 해가 짐에 따라 변하는 물의 색을 자세히 바라본다. 물고기의 움직임에 반짝이는 물결의 색을 포착한다. 점점 거세지는 파도가 담아온 노을의 색에 발을 담가보기도 한다. 해가 지기 직전 시시 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색을 기억하고 해진 후 보랏빛 하늘에 별이 떠오르는 것을 지켜본다. 해가 온전히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땐 마음속에 노을이 이미 가득 담겨있다. 


 여행을 할수록 일상과 여행이 본질적으로 다름이 없음을 조금씩 이해해간다. 매일 걸어야 하는 이 일상의 길을 여행을 하듯 걸을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새벽을 밝히는 아침 햇살을 온전히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고 창가에 깃든 노을의 손짓에 고된 하루를 위로받을 수 있다면. 삶이라는 여행을 일상이라는 감옥에 가두지 않고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2017년,

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