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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Feb 15. 2017

여행 가서도 집이 필요해 1

좋은 일 하고 돈도 벌면서 여행하는 법

  여행을 떠나기 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뭘까?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여행에 소요되는 경비가 아닐까. 중학교 시절부터 세계지도를 방 한편에 붙여놓고 언젠간 꼭 세계여행을 해야지 하고 생각해왔었다.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입학하지도 못했을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꿈은 마음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서울에 집이 없는, 요샛말로 '지방러'인 나는 친구들이 용돈으로 받는 돈을 매달 자취방에 쏟아부었다.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여름엔 전기세 겨울엔 가스비 걱정하느라 여행은 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하루빨리 졸업하고 취직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사는 게 꿈이 되었다. 



 그래도 그땐 삶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다음 학기엔 아르바이트를 좀 덜해보자는 마음으로 방학 때 주말 없이 일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이 치열한 달리기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더욱 치열한 또 다른 달리기 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달릴 수가 없었다. 나는 매우 지쳐있었다. 그때 내게 손을 내민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던 세계여행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장기 자원봉사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봉사활동 단체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캠프힐이라는 단체였다. 

http://camphill.net/


 당장 휴학을 했다. 단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치매나 발달장애가 있는 노인을 케어하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기관을 발견했다. 기관의 웹사이트를 통해 지원서를 제출하고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주가 지나도 대답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기관에 국제전화로 문의를 했더니 그다음 주에 스카이프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준비했다. 혹시라도 스코틀랜드 억양 때문에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면접을 진행한 매니저가 미국 출신이라 대화하기 수월했다. 두 달에 걸친 선발 과정을 거치고 최종 합격 통보와 비자를 위한 서류들을 우편으로 받았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400만 원 정도를 모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벌어 본 큰돈이었다. 기관에서 매월 30만 원 정도의(2014년 환율) 용돈을 지급하고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휴가를 통해서 여행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모았다. 빵집에서 주 5일로 매일 9시간씩 일하면서 교통비 이외에는 어떤 지출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일하느라 바빠 돈 쓸 시간도 없었다. 휴학을 하고 6개월이 지나던 달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과 기대와 함께.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처음으로 찍어본 날개 사진


여행 가서도 집이 필요해 2편에서는 제가 생활했던 기관인 'Simeon Care for the Elderly'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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