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풍경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날씨가 좋다, 구름이 예쁘다부터 시작해서, 저 건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저 사람 둘은 무슨 얘기를 하길래 심각한 표정일까, 종이 박스를 가득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보면서 매일 수행하듯 사시는 수도승 같구나, 막내 동생의 어린 시절을 닮은 어린이를 보면서 내가 다 키워줬지 하면서 풍경에 담기는 사물과 사람은 내 생각의 원천 소스들이다. 그렇게 내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다 보면 어느새 나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요 근래 그런 풍경 속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곱씹어 생각하고 있다. 마치 영상을 보다가 어느 장면에 빠져 구간반복 설정을 하듯이 말이다.
얼추 십 년 가까이 지난, 과일 농사를 도와주러 간 집에서 본 장면이다. 새벽에 일어나 과수원에 가서 돌아온 농가주와 일행들은 함께 밥을 해 먹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였다. 보통 여기까지가 식사 준비와 정리였는데 이 집은 한 단계가 더 있었다. 바로 설거지 한 그릇들을 일일이 마른행주로 닦아 제자리에 넣는 것까지 바로 하였다. 바쁜 농번기에도 몸이 힘들어도, 이 과정을 빼먹지 않고 여자 농부께서 챙겨 직접 하거나 같이 도왔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큰 그릇부터 작은 스푼까지 다 닦아 서랍에 넣는 장면은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왜 강렬한가 하면 바쁜 농번기에 나라면 밥 먹고 바로 설거지만 한 것도 대단한데 일일이 닦아서 그릇을 제자리에 넣는 것이 그릇을 더 오래 쓰게 하는 방법인지, 아니면 그릇을 안 좋게 하는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은 일의 과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이렇게까지 좋게 생각하는 것 또한 이 농부 부부의 요리와 주방을 대하는 마인드를 이전부터 얘기로 많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농사를 도우러 올 때마다 농작물을 키우는 건강한 신념을 가르쳐주시고, 저녁마다 나누는 대화는 교양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인문, 경제, 정치, 사회, 자연과학, 예술, 요리, 음식, 여행, 농업, 지역, 교육, 육아, 결혼 등 분야를 막론하고 대화의 주제는 끊임없이 나오며 귀에 꽂히게 말씀을 아주 잘하셨다. 비판을 하실 때도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탓하는 감정적인 어휘보다 역사, 맥락, 정보를 활용하셔서 얘기하셨다. 어떻게 저 많은 지식을 아시는 거지 싶을 정도로 호기심과 탐구력이 대단하셨다. 서재에 꽂힌 수많은 책들을 직접 읽고 실천하는 분들이셨다. 자녀들과도 많은 대화를 하며 정말 가족 구성원 간 평등하다고 해야 할까, 합리적이라고 해야 할까 각자 제 역할을 원활히 소통하며 조율할 수 있는 아마도 한국에서 보기 힘든(!)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참 좋아 보였다. 그릇을 닦는 것을 내가 동경하는 이유는 이런 맥락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일 테다.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 않아 여전히 나는 자식의 위치에서 이 가족을 마주할 때마다 이 농부 분들이 나의 부모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부러움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더 큰 부러움이 있었다. 부모님과 다양한 주제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경험이 드물었기에 한때는 나의 문화적 자본이 부족하다고 본의 아니게 비교하며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에는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가 이후 설거지하는 장면을 보거나 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닦는 그 농부의 부엌이 생각하다 보니 내가 결핍을 마주한 것이었구나는 것을 깨달았다.
농부 부부의 부모와 형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가족에서 만들어진 두 분의 문화적 토양도 부러웠다. 나의 부모님이 다른 부모를 보며 가진 동경은 이윽고 내 부모의 동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슬프지만, 내 부모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한 때는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으로 느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게 결핍이 있을 뿐이다. 내 부모도 분명 최선을 다하여 자식들을 키워주셨다. 그 마음을 알기에 이 결핍을 마주한 일이 참 다행스럽다.
앞으로 설거지 후 그릇을 닦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