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작년이었을 거다. 이 큐브를 산 것은.
저녁을 먹고 부른 배를 소화시키려 안 가본 동네를 찾아 걸어 다녔다. 언덕을 깎아 만든 오래된 주택들을 철거하고 또 언덕을 깎아 세운 아파트와 상가가 일렬로 세워진 동네였다. 많은 상점들이 나란히 있었고 무인 상점도 눈에 띄었다. 무인 아이스크림과 과자 가게, 무인 밀키트와 반찬, 무인 고깃집 그리고 무인 문구점도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초등학생 때 내게 문구점은 삼시세끼 보다 중요한 곳이었다. 용돈도 남아있지 않지만 문구점에 들러 아이쇼핑은 꼭 해야 했다. 알록달록 신기한 물건이 참 많았지. 문구점 사장님의 눈치도 못 느껴 다행히 오래 아이쇼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가 그랬고 작은 문구점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래서 등굣길에도 하굣길에도 문구점 입구에는 어른이 상주하여 물건을 구경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었다. 혹시나 아이가 물건을 훔칠 수도 있으니 예의주시하는 사장님도 있었고, 그냥 자리를 지키는 어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CCTV도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인간의 노동력을 없애는 데 일조한 기계였군.
초등학생 때 나를 떠올리며 들어간 무인 문구점은 디자인은 달라졌지만 그냥저냥 그 시절 장난감들, 수첩, 군것질 거리가 변함없이 있었다. 사고 나서 3일 이상은 안 쓸 것 같은 물건들이 그땐 왜 그리 좋았지 머쓱해하며 구경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알록달록 정육면체가 있었다. 바로 큐브였다.
어릴 때는 몰랐다가 꽤 크고 나서 알게 되었다. 진기명기 쇼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수 초내로 같은 색깔로 6면을 맞추는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뇌에서 전달하는 명령으로 손이 움직일 텐데 어쩜 저렇게 빠르게 생각하고 맞출 수 있는가! 똑똑함을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장난감(!)으로 내 안에서 각인되어 있었는데 무인 문구점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그래서 내 뇌가 사라고 명령을 내려 손이 카드를 꺼내버렸다.
맞추는 룰이 있었다. 3일 동안은 유튜브 보며 따라 맞추다가 서랍 속에 고이 자리했다. 1974년 헝가리의 한 미대 교수가 처음 고안해 만든 큐브는 아마 전 세계 많은 이의 책상 서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다시 꺼내 이리저리 돌려보는 반복 행동을 통해 심신의 안정에 도움을 받고 있다. 육면의 색을 일관되게 맞추고 싶은 목표의식은 사라졌고 이리저리 돌아가는 사각형 색깔을 조합해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정육면체 도구이다.
맞추려고 해도 맞춰지지 않는 인생을 큐브에 투영해 보기, 내 뇌는 정해진 룰을 참 싫어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