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에 비친 영화와 문학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2018)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다.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한 오정미 작가가 소설을 먼저 읽고 이창동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창동 감독은 "오정미 작가와 나는 지금 이 세계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헛간을 태우다』라는 짧고 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찾아온 이야기로 확장할 통로를 발견했던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소설의 플롯을 따르지만 인물과 장소, 사건의 설정은 조금씩 또는 많이 달라진다. 소설에서 유부남인 주인공은 서른한 살이고 아는 사람 결혼피로연에서 만나 친해진 그녀는 스물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종수'와 여자친구 '해미'는 스물일곱 살 동갑내기다. 흰색 미니 스커트를 입고 춤추는 내레이터 모델 '해미'와 1톤 트럭에서 내린 '종수'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소는 서울 변두리의 어느 임시 매장 앞이다. 둘은 어릴 때 파주시 탄현면의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 종수가 해미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녀가 성형수술을 했기 때문. 종수는 일곱 살 때 우물에 빠진 해미를 구해준 적이 있다. 그런 종수는 해미를 "못생겼다"고 놀렸다. 그래서 성형 수술을 했다고.
종수와 해미는 곧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다. 판토마임을 배우고 있는 해미는 모은 돈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종수에게 아프리카 부시맨에게 있다는 두 종류의 '헝거'(굶주린 자)에 대해 말한다. 리틀 헝거는 그냥 배고픈 사람,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 우리가 왜 사는지,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려고 하는 사람이 진짜 배고픈 사람이라는 것. 생계를 위해 춤추는 '리틀 헝거' 해미는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 싶어한다. 아프리카에 가고 싶은 이유다.
리틀 헝거, 그레이트 헝거처럼 영화는 도처에 메타포가 가득하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 영화가 '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결점이 없지 않다. 또 하나의 메타포는 자동차다. 영화는 소설보다 구체적인 현실 세계로 확장되는데, 리얼리티를 더하는 장치로 자동차는 중요한 메타포가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소설가 지망생 종수는 기아 1톤 트럭 봉고(그의 아버지 차이지만)를 타고 다닌다. 그리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해미가 그곳에서 만났다는 부잣집 아들 ‘벤’(35세)은 쥐색 포르쉐 911 카레라를 탄다. 소설에서 '얼룩 하나 없는 은색 독일제 스포츠카'로 묘사되는 차다. 사실 911은 은색이 대표적인 컬러다. 소설 속 주인공은 그 남자에 대해 꼭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같다고 생각한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청년들. 영화에서 종수는 해미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젊은 나이에 저렇게 살 수 있지? 여유 있게…… 해외여행 다니고……포르쉐 몰고……"
"가끔씩 헛간을 태운답니다"
소설에서 남자가 말하는 이 대사는 벤의 입을 통해 "난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워요"로 바뀐다. 벤은 쓸모없고 지저분해서 거슬리는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그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고 종수에게 말한다. 『헛간을 태우다』의 모티브가 된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불태우다』(Barn, Burning)가 분노의 방식으로 방화가 표출된 것이라면, 벤의 행위는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이다. 분노는 종수의 것이다.
'버닝'에서 자동차는 종수와 벤이 처해 있는 상황처럼 극명한 대척점으로 그려진다. 종수는 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다. "이것저것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그냥 노는 거에요"라고 말한다. "놀아요?" 반문하는 종수에게 벤은 "예, 요즘은 노는 것과 일하는 게 구분이 없어졌거든요"라고 대답한다. 종수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사는 벤의 포르쉐와 종수의 1톤 트럭은 곧 ‘노는 자’의 차와 ‘일하는 자’의 차라는 이분법으로 갈라진다. 해미의 짐가방을 종수의 1톤 트럭에서 벤의 포르쉐로 옮기는 순간 갈라지는 운명처럼.
카드빚을 남기고 사라진 해미를 찾기 위해 종수는 벤의 주변을 서성댄다. 벤의 집에서 해미의 분홍색 손목시계를 발견한 종수는 벤이 해미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한강철교와 63 빌딩이 배경으로 스쳐 지나가는 88 올림픽대로에서 벤의 포르쉐 911은 지그재그로 다른 차를 추월하며 빠르게 사라져 가고 봉고의 운전석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종수는 무력하기만 하다. 도달할 수 없는 거리는 쓸쓸하다.
영화에서 비닐하우스가 불타는 장면은 종수의 꿈 속에서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일곱 살 종수의 모습. 그리고 현실에서 불타는 것은 벤과 그의 포르쉐다. "지금 이 세계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그 작동 방식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다. 그것은 국가 권력에 대항했던 종수 아버지의 분노와 그 대상이 희미한 종수의 분노와 대비되면서 지금 이 시대를 은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