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즉흥적이었던 1년 휴직
2019년 1월의 어느 날, 새해를 맞이하는 여느 때와는 달리 새 출발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느껴지지 않은 무료한 느낌이 이어졌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니, 이번 연도를 잘 보내기 위해 무슨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를 골똘히 떠올려본다.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즐겁고 신나는 기분보다는 어떻게 한 해를 의미 있게 가득 채울 것인가에 대한 압박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압박감을 금세 의욕으로 치환해줄 만한 새로운 이벤트가 앞으로의 나의 삶에 없어 보였다. 결혼을 하고 만 6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이었고, 그간 돈을 차곡차곡 모아 예쁜 집도 마련했고, 9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앞으로의 1년이 전의 1년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간절히 가고 싶은 해외여행도 없다. 돈을 열심히 저축해서 이것만큼은 내 것으로 만들겠다 싶은 물욕도 없다. 대학 졸업 후 착실하게 사회가 정답이라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그 수순을 밟고 나니,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꿈이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이가 없이 안정적인 삶을 이어 나가는 부부에게 일어나는, 차마 입 밖으로 하기엔 미안한 따분함 같은 것 때문일까. 이 느낌은 낯설지 않았다. '18년 3월. 오랜 고민 끝에 인테리어 계획을 세우고 공사가 끝난 집에 입주하고 난 이후에, 꿈속에서 사는 것 같은 행복함을 느끼는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내 집 꾸미기'라는 나 자신 속 잠재되어 있던 열정을 한 껏 불태웠던 일이 끝나고야 말았다는 허무함도 동시에 찾아오고 말았다. 회사 일은 내가 맡고 있던 사업분야가 고공행진을 멈추고 빠른 하락 길을 타고 있는 상태였다. 더 이상 내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8년 동안 몸 담그고 있던 팀을 떠나 전혀 새로운 일을 찾아 전배를 신청했다. 다른 회사로의 이직도 아닌 2개 층 아래 있는 다른 부서로의 전배. 그래도 그 당시 나에겐 꽤나 큰 결심과 변화였다. 주로 책상에 앉아서 혹은 회의실에서 매번 같은 무리의 사람들과 업무를 하던 상품기획 일에서, 우리 회사의 라이브쇼를 담당하는 이벤트 부서로 옮기니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신선함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같은 조직 체계 속 상명하복이라는 절대복종 체계를 따르는 문화는 다르지 않았다. 일을 하는 사람과 진행 방식의 차이가 조금 있었을 뿐,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시 New Year's Resolution을 세우는 시기가 되었지만, 더 이상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열정만큼은 가득한 아직은 젊은(?) 나이의 나인데, 내가 가야 할 정류장들을 모두 지나쳐버린 상태 같았다. 아직 내 엔진은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을 착실하게 받아오면서, 자기 주도 '학습(세상이 익혀야 한다고 이미 정해놓은 교육 커리큘럼)'은 한 적이 있어도 자기 주도적인 '삶'에 대한 고민의 과정은 없었던 것 같다. 배운 적이 없었고,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인생 헛공부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아주 오랜만에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란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남기고자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는 '올해 목표'에 적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편에게 고백했다.
"나, 1년만 쉬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