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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 중독자 Jun 10. 2020

04. 평범한 직장인이 도예가를 만났을 때

열정, 마음 속 그 뜨거움의 지속성

삶의 모습을 이분화할 순 없지만, 평범한 삶과 비범한 삶의 범주로 구분하자면 나의 삶은 평범한 삶에 속할 것이다. 적어도 여느 소설가나 글쟁이의 소재가 될 정도로 특별한 점이라고는 없이 적당히 열심히 살면서 평범하게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으며 살아온 삶이다. 자칭 평범인의 관점에서 나와는 다른 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삶의 모습을 조우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친구와 함께 준비한 전시회에 섭외한 작가분들의 90%가 도자기 공예를 하시는 분들이었다. 전시회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풀어보도록 하고. 전시를 찾아온 이들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으려면 되도록 작품들의 색과 결이 겹치지 않는 것들로 준비해야 했는데, 그런 걱정은 기우였고 각각의 개성이 분명한 분들만을 모시게 되었다. 그 중에는 작품을 보자마자 '이게 도자기라고?' 하며 감탄했던 분도 계셨다. 자연의 색깔, 혹은 백자의 희고 고운 결을 살리는 작품들이 많은 도자기 세계에서 빨강, 짙은 보라, 남색 등의 과감한 유약을 사용하고 안쪽은 은(Silver)으로 도금을 한 작품을 만드시는 분이었다. 강렬한 색상을 도자기에 사용하시는 분인 만큼, 실제로 만났을 때는 어떤 느낌일까 기대 반 긴장 반 하고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작품의 색만 보자면 꽤나 도도하고 강한 인상의 분일 것이란 짐작을 하고 갔었다. 이천 도자기 마을에 한 건물에 작업실이 있다 하여 간 곳은, 여러 작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작가님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앳된 모습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한 느낌. 


나이를 여쭤보진 않았지만, 20대 중반은 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분이었다. 인상은 갓 대학 졸업한 분이었으나, 예술하시는 분 답게 화장하는 거나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여자분이셨다. 작품에 대한 소개와 디자인 스토리를 들려주시는 동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앳된 인상 속에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과 자기 개성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아했던 건 이 분의 일상이었다. 아무리 봐도 20대 중반 정도라 생각되는데, 그 나이 때를 생각해보면 한창 친구들 만나면서 놀고 싶고 돌아다니기 좋아할 시기 아닌가. 사회에 첫발을 디디고 독립적인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시기. 학업이 너무 즐거워서 순수 탐구의 열정으로 가득 차 대학생활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할 이가 내 주변에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20대 중반의 삶은 주체적인 권리를 손에 쥐고 그동안 억눌려왔던 자유를 마음껏 발산하는 시기이다. 나의 20대 중반의 삶도 그러했고, 그 조차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축적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시기라 생각한다. 


그런 인생의 황금기에, 친구와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창작의 세계에 몰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작가. 숙소와 작업실이 한 건물에 있고, 그 건물 주변으로는 도자기 공방들과 작은 천과 주변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자연 친화적인 환경들 뿐, 식당들도 잘 보이지 않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는 관광객들이 들어오는 길목 초입에 하나 있으나 이마저도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될 거리에 위치한다. 도시 문명과 단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떨어져 있는 곳에서의 삶. 그곳에서 그녀는 20대의 젊음을 자신의 창작 활동에 바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처음에는 동정 어린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고 그 동정의 느낌은 나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20대 중반(아마도)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꿈을 실현해나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앳된 얼굴에서도 반짝이는 눈을 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즐거워하는 목소리.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았으니, 그녀가 그 생활에 온전히 만족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고독할 수 있음을 감수하면서도 그곳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20대 중반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쾌락적 생활의 즐거움과는 거리를 두고.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나에겐 그 시절 그 무용한 즐거움이 좋았다. 그 즐거움과 기꺼이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일이 내겐 없었다. 그 열정을 주말의 친구들과 쇼핑, 클럽, 핫플레이스 다니는 데 썼던 것 같다. 일회성 열정. 그 일회성의 연속. 그렇듯 나의 열정은 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황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길어져 그때처럼 강렬하지 않은 상태로 내 안에 어딘가 깊숙이 잠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열정을 한 자리에서 고즈넉이 불태우고 있었다.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거나 활활 타오르지도 않지만,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숯의 알불과도 같이. 작업하다가 으레 있을 수 있는 상실감도 좌절하지 않고 품을 수 있는 열정. 그런 열정적인 일을 찾은 그 작가가 부러웠다. 그것도 그렇게 이른 나이에. 


나도 언젠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따위 없이 

앞에 펼쳐질 미래가 불분명한 불확실성뿐이더라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열정과 신념이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 여정이 끝날 무렵이 되면 내 열정도 어딘가에 자리잡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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