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ce of Life
양의 축적이 특정 임계에 달하면 질적 전화가 일어난다.
- 헤겔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진심으로 듣고 싶어하는 칭찬은 딱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잘 생겼다. / 예쁘다.
(2) 머리가 좋다.
양(洋)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에 따라 미의 기준은 계속해서 변해 왔을지라도, 미(아름다움; Beauty) 자체가 상찬되지 않은 때는 인류가 직립한 이후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삼국지 최고의 지략가 중 하나인 주유가 미(美)주랑으로 불렸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촉의 오호대장군 중 한 명이자 서량의 맹주였던 마초가 금마초, 옥마초로 불린 이유가 그의 빼어난 외모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중국의 삼국시대는 서기 200년이었습니다.
배우 정우성이 항상 하는 말인 "잘 생긴게 최고야. 짜릿해!"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외모 자체가 경쟁력이고, 그것이 경제적 부의 축적과 직결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외모지상주의의 뿌리는 사실 그보다 훨씬 유서있고 심원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저는 대학 시절 내내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 교사로 일했는데, 첫 방문에서 학생의 부모님과 상담을 진행할 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들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진단한 대부분의 학생들의 문제는 노력은 어느 정도 하는데 머리가 좋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부모님들께 이러한 말씀을 그대로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매우 실망하실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머리가 좋지 않다면 노력을 더 하고 효율적인 학습법을 배워서 보완하면 되는데,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다(또는 평범하다)는 명제 하나에 더 할 나위 없이 실망하실 것이 너무도 예상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한 친구에 대해 이렇게 평하셨습니다.
"현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성적이 정말 형편없다." (당연히 가명입니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것입니다! 아니, 대체 왜요? 선생님 발언의 핵심은 "성적이 형편없다"였는데, 제 친구의 귀에는 "머리는 좋은데"만 들어올 뿐이었습니다.
타고난 외모에 대한 칭찬과 날 때부터 명석했던 두뇌에 대한 칭찬 외의 모든 칭찬들은 사실상 주변적인 칭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나머지 잘 하는 것들은 기껏해야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모두의 생각에 각인돼 있는 것입니다.
본질과 유래를 알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타고난 미모, 선천적 재능, 생래적 천재성에 대한 희구와 동경이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 본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친구들의 존재는 이에 대한 좋은 예시일 것입니다.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에 대해 제가 가진 몇 가지 관점들이 있습니다.
(1) 천재는 절대 이길 수 없다.
(2) 그러나 천재는 극소수이다.
(3) 우리 주변에 있는 똑똑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은 기껏해야 수재이다.
(4) 노력하면 수재의 경지에는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천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의 역사가 온 몸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날 때부터 천재로 태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발언인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오인되고는 하지만, 이는 사실 1%의 영감이 없으면 절대로 천재가 될 수 없다는 취지로 한 말이었습니다.
우선 겸허하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사실 또한 존재합니다. 스스로 천재라고 떠들거나, 우리가 생각하기에 천재라고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천재(天才), 즉 하늘이 내린 재능이 아닙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수재 정도일 뿐입니다.
문학에 있어서 셰익스피어나, 윌리엄 예이츠, 찰스 디킨스는 천재입니다. 과학의 영역에서 아인슈타인과 케플러는 천재입니다. 음악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천재일 것입니다. 수학에서 파스칼과 존 내쉬는 천재입니다. 농구에서 마이클 조던은 천재입니다. 투자에서 워런 버핏은 천재이며, 경영에서 잭 웰치는 천재이고, 창업에서 일론 머스크는 분명 천재입니다.
천재는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천재인 척하는 많은 사람들은 천재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정도의 재능만을 타고난 사람일 뿐입니다. 진짜 천재들에 대해 스티븐 킹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을 내려다보는 높은 자리에는 - 셰익스피어와 포크너와 예이츠와 쇼와 유도라 웰티 같은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천재이며 거룩한 우연의 산물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재능을 갖기는 커녕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아니, 대부분의 천재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천재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들은 결국 우연이 빚어낸 괴물에 불과하다고 (적어도 어느 정도는) 느낀다. 지적인 일을 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 어쩌다가 예쁜 광대뼈와 시대의 이미지에 맞는 유방을 타고난 패션 모델처럼 그들도 우연히 그렇게 태어났던 것이다." - 스티븐 킹, <On Writing>
이런 천재들은,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생각하는, 3억 5천만부의 책을 팔아 치운 <쇼생크 탈출>의 작가 스티븐 킹이 천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현대에는 많은 신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신화는 절대 고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혜로워 질 것이라는 신화가 존재합니다. 이는 중언할 필요도 없이 신화입니다.
유년기에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절대 현지인처럼 영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명제도 신화입니다. 저는 스무살 이후에 영어를 시작해 현지인들도 속을 만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습니다.
노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 또한 대표적인 현대의 신화입니다.
스티븐 킹의 글을 조금 더 옮겨보겠습니다.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비평가나 창작 교사들이 많다. 정치적으로는 개방적이지만 자기 분야에서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들이다. 동네 컨트리 클럽에서 아프라카계 미국인이나 토박이 미국인을 배척하는 데 항의하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학생들에게는 저마다 창작 능력이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다고 가르친다. 한 번 삼류는 영원한 삼류라는 것이다. 가령 어떤 작가가 영향력 있는 비평가 한두 명에게 높은 평가를 받더라도 초기에 받았던 평가는 평생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어렸을 때 말썽꾸리기였던 여자는 점잖은 부인이 되어도 그런 대접을 받는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일찍이 전후시대의 삭막한 도시 생활을 잘 묘사한 작가로서 이제 20세기 미국 문학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런 평가를 거부하는 비평가들도 많다. 그들은 분연히 외친다. "그 자는 삼류야! 그것도 건방진 삼류라고! 그런 자들이야말로 최악이지! 감히 우리와 어울릴 수 있다고 착각하니까 말야!"
이와 같은 지적인 동맥 경화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비평가들은 대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그들의 동료들은 설령 챈들러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끼워주더라도 반드시 말석에 앉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저질 소설이나 쓰던 자인데 말야... 그런 놈치고는 꽤 잘하지? 30년대에는 <블랙 마스크>에 글을 실었는데... 그래, 한심한 일이지..."
심지어는 소설 문학의 셰익스피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디킨스조차도 종종 선정적인 내용을 다루고 신나게 아이들을 낳고, 당대와 우리 시대의 저급 독자층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평가들의 공격을 받았다. (중략)
그러나 여러분이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하기가 귀찮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차라리 제법 괜찮은 수준에서 만족하면서 그나마 그것도 다행으로 여기도록 하라."
노력하면 상당한 경지에 반드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신화에 속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다고,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속삭이는 세상의 프레임 속으로 걸어들어가지 마시기를.
노력하지 않는 자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조용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죽어라고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면, 그건 결국 내가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재능 없음을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굳이 있겠는가? 그냥 노력을 하지 않고, 원래 안 되는 일로, 나의 길이 아니었던 것으로 믿어버리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속지 마십시오. 노력의 최대 미덕은 절대로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우리의 재능이 몇몇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등에 칼을 꽂는 것과 대조되는 특질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20대때 읽은 이현세 작가의 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재능이 노력과 어우러져 봄의 찬가마냥 아름답게 꽃을 피우기를.
*
살다보면 꼭 한 번은 재수가 좋든 나쁘든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와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도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 두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고는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날 신의 벽을 만나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 이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