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11. 유에스더 집사
유에스더 집사는 오늘 아침 허리에 미세한 통증을 느꼈다. 가끔 찾아오는 가벼운 허리디스크였다.
통증은 금세 사라졌지만 그녀는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기로 했다. 가벼운 증상이라고 하찮게 여기면 나이 들어 더 큰 값을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간호사 출신인 것을 강조하며 건강을 세심히 챙겼다.
오늘 하루 종일 누워있을 자신을 대신해 집안일을 돌봐 줄 도우미 할머니를 부르고 최귀녀 성도에게는 건강상 교회 출석이 어려워 픽업을 못 가게 되었노라고 연락했다. 그 와중에도 최성도에게 자신과 남편 주집사는 신앙이 돈독한 부부이며 출석 대신 가정예배로 주일성수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남편이 최귀녀 성도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했을 때 그녀는 아무 소리 내지 않고 손을 휘휘 저으며 싫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지 말고 받아. 집에 있는 거 다 알고 전화했는데......’’ 주집사가 스마트폰의 소리 잠금 기능을 누르고 말했다.
‘‘어휴, 내가 미쳐 정말. 그 아줌마 전화하면 기본이 한 시간이라고.’’ 에스더가 짜증을 냈다.
‘‘그래도 걱정돼서 전화했다는데 한 번 받아 봐.’’
‘‘걱정은 무슨. 자기 심심해서 수다 떨라고 그러는 거지. 똑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고. 무슨 어학 학습기도 아니고 말이야.’’
‘‘또 그 여자나?’’ 같은 방에서 다림질을 하던 할머니가 눈치를 채고 말했다.
주집사는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하고 다시 에스더에게 물었다.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고? 전화받기 싫어한다고 사실대로 말해?’’
‘‘자기가 적당히 핑계 하나 만들어서 끊어.’’
‘‘내가 갑자기 무슨 핑계를 만들어? 당신이 직접 해.’’
주집사는 스마트폰을 유집사 옆에 놓고 방을 나가 버렸다.
‘‘아이고, 믿음아. 그 여자는 제정신이 아닌게라. 사지 멀쩡한 사람이 한 발짝도 안 나오고 그렇게 집에만 있으니 어찌 정상이겠나? 그냥 끊어라.’’ 할머니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에스더는 남편이 두고 간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어휴’ 하고 크게 한 숨을 쉬었다. 할머니를 향해 입술에 손가락을 같다 대며 이제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보냈다. 그리고 소리 잠금 기능을 해제했다.
최귀녀는 장시간 통화의 달인이었다. 적당한 틈을 타서 핑계를 대고 통화를 마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행여 에스더가 ‘그런데, 저기요.’하고 운을 떼려고 하면 최성도는 재빠르게 ‘아니 그러니까 내 말 먼저 들어봐.’ 하고ㅌ 말을 이어나갔다. 중간중간 ‘믿음이 엄마 내 말 잘 듣고 있어?’하고 코맹맹이 소리로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에스더는 이미 열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를 또 듣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도우미 할머니가 지금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에 몹시 무안했다. 할머니는 그 내막을 다 안다는 듯 조용히 다림질을 하며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에스더는 최성도가 도우미 흉을 실컷 보고 다음 주제인 ‘방을 보러 왔던 유학생’ 흉으로 넘어가려는 틈을 타서 겨우 아기 간식 줄 시간이라고 핑곗거리를 삽입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은데 조금 있다가 또 전화를 하겠다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무슨 핑계를 만들어야 할지 벌써 고민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할머니가 측은하다는 듯 말했다.
‘‘믿음아, 그냥 안 받는다고 해라. 정신 나간 사람을 언제까지 상대하려고?’’
‘‘그래도 교회 성도님이라서 그럴 수 없어요.’’
‘‘그 교회 사람들 마음도 좋네!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다 들었어! 내가 여러 집 다니면서 일해 봤지만 그렇게 이상한 여자는 처음 봤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최귀녀 버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할머니는 어느 권사님 소계로 최귀녀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최귀녀는 상주 가사도우미를 구하고 있었으며 거처로 작년에 시집간 딸이 쓰던 빈 방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일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던 날 최귀녀는 ‘할머니, 그러니까 있잖아요.’ 하며 콧소리를 넣어 말을 꺼내더니 이제부터 거실 소파에서 잘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은 수입이 없고 쥐꼬리만 한 보조금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도우미 월급 지불이 큰 부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딸이 쓰던 방을 유학생에게 세 놓아 그 돈으로 할머니의 월급을 충당하겠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이건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당장 갈 곳이 없었고 또 자신은 나이가 많아 젊은 사람들보다 일거리 찾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그냥 눌러 있기로 했다.
그러나 잠자리의 불편함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하루 종일 최귀녀의 신경질을 받아주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그녀는 말동무가 필요했던지 늘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할머니가 듣다 지쳐 그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했다고 말하면 최귀녀는 바로 안색이 싸늘하게 변하며 입술을 야무지게 다물고 할머니를 노려보았다.
할머니는 최귀녀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혼자 외롭게 살다 보니 정신이 조금 이상해 진 것 같다고 판했다. 그래서 환자 돌본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언행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했단다.
그러나 최귀녀의 불평과 잔소리는 점점 심해졌고 결국은 할머니가 자신의 여권을 훔쳐서 미국으로 도망가려고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버렸다. 할머니는 아무리 환자라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 결국 최귀녀가 할머니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고 할머니는 하도 질려서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나와 버렸다.
할머니는 에스더에게 최귀녀의 평판에 대해 조금 더 알려 주었다. 할머니는 요즘 샘물교회 권사님 댁에서도 일을 하는데 최귀녀가 이미 그 교회도 거쳐갔다는 것이다.
권사님 말로는 최귀녀가 샘물교회에 출석하기 전에도 여러 한인교회를 다니다가 나왔으며 샘물교회를 떠난 이후로도 또 여러 교회를 거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파리에 있는 한인교회 중 그녀가 거쳐 가지 않은 교회가 없단다. 따라서 그녀는 교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최귀녀에 대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최귀녀는 항상 아프다며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부탁한다. 물론 신도들에게도 늘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지극히 건강해 보이며 몸에 특별한 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둘째, 픽업해 줄 사람을 요청한다. 자신은 건강이 나빠서 혼자 교회에 올 수 없으니 차 있는 성도가 데리러 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성격이 유순한 자매들을 골라 성도 간의 교제라며 시시때때로 전화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심성 고운 자매라도 했던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최귀녀에게 결국 지쳐버리고 아무도 그녀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게 된다. 그러면 최귀녀는 성도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며 교회를 옮긴다.
샘물교회 권사님은 최귀녀가 이미 파리의 한인교회를 다 섭렵한지라 더 갈 곳이 없었는지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이번에는 새로 생긴 영광교회로 가서 또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가 보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고 한다.
‘‘거기가 새로 생겼고 믿음이 엄마같이 착한 사람이 픽업도 해주고 말동무도 해주니 또 거기 가서 철썩 들러붙은 거라. 몹쓸 여자 같으니라고......’’ 할머니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에스더는 영광교회에서도 머지않아 같은 사연이 반복되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신도가 열 명도 안 되는 교회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최귀녀의 밉상도 웃는 얼굴로 받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면 더 이상 그녀의 비위를 맞춰 줄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