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유방 MRI 검진에서 '의심스러운 이상(a suspicious abnormality)'이 있다는 결과를 받은 후 조직검사를 위해 초음파 검사를 예약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고지를 받은 사람의 심정으로 주말을 보내고, 화요일 오후 KP 벨뷰 메디컬센터(Bellevue Medical Center)에 도착했다. 유방영상센터(Breast Imaging Center)가 있는 4층에 도착해 체크인하니, 50대로 보이는 소노그래퍼 T가 검사구역 문을 열고 내 이름을 불렀다. T를 따라 검사 구역 안의 탈의실에서 가운으로 갈아 입고 초음파 검사실로 이동했다.
사진. 초음파 검사와 생검을 실시하는 검사실
초음파와 흰 천이 깔린 침대 옆에 생검(biopsy)을 위한 물품들이 놓여 있었다. T가 오늘 내가 검사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한 후, 이런 검사는 매우 자주 진행되며 많은 경우에 양성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T가 MRI에서 문제가 된 부위를 초음파로 확인하는 중 생검을 담당할 Dr. K가 들어왔다. Dr. K는 침대 발치에 서서 자신을 소개하고 T와 함께 초음파를 확인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MRI에서 하얗게 보였던 부위가 초음파 상으로는 깨끗하다, 양성이길 바라지만, 자신은 초음파 생검(US-guided biopsy)을 담당하기 때문에, 내 결과를 가지고 MRI 생검(MRI-guided biopsy)을 담당하는 영상의학과 의사와 같이 상의해보겠다며 방을 나갔다.
검사실에서 원래 옷으로 갈아입은 후 나를 데리러 온 MA를 따라 옆의 상담실로 이동했다. 약 5분 후 Dr. K가 찾아와 테이블 옆 의자에 마주 앉아 MRI 생검을 담당하는 의사와 의논한 내용을 설명했다. MRI에서 의심스럽다고 보인 부위가 유방촬영술과 유방초음파 상에서는 깨끗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 고위험이 아니면 더 이상 조직검사를 하지 않으나, 나는 고위험군에 해당하므로 MRI 생검을 통해 의심스러운 부위가 양성인지 확실히 해두는 게 나의 안전을 위해(for your safety) 필요하고, 매년 MRI 검진에서 보일 부분이므로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Dr. K가 방을 떠난 후 MA와 그다음 주로 MRI 생검을 예약했다. 초음파 검사와 담당 의사와의 상담, 이후 또 다른 의사와의 상의와 MRI 생검의 예약까지 물 흐르듯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사진. 검사실 옆 상담실. 환자가 검사 후 대기하다가 의사와 상의하거나 MA와 검사를 예약한다.
이전에 경험한 영상 검사들 중 검사자와 결과 상담자가 달라 검사자가 검사에 대해 말을 아끼고 환자에게 일정 거리를 두는 상황을 만날 때 검사 과정 자체에서 불안이 고조되곤 했다. 그러나 여기에선 그렇지 않았다. 소노그래퍼는 "아무 문제없을 거다, 괜찮을 거다"가 아니라, "이 검사는 아주 자주 하는 검사이고, 양성인 경우가 많다"며 좋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Dr. K는 Vast majority(거의 모두 또는 90% 이상을 의미)가 양성이고 너도 양성이길 바라지만(hopefully, I am hopeful) 너의 안전을 위해 추가 검사를 하자고 했다. 희망을 단언하지는 않지만 나를 위해 희망을 상기시켜주는 사람들 덕에, 주말 내내 악성의 가능성을 고민하며 바닥으로 가라앉던 마음에 다시 희망이 들어왔다.
그리고 비용. 그냥 MRI도 아니고 MRI 생검이라니, 그것도 미국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과연 미국에서 MRI 조직검사의 비용은 얼마일까 궁금했지만, 사실 검사의 실제 비용보다 중요한 건, 내 보험이 내게 얼마를 청구할지다. 내 경우, 한 해의 최대 지불액(out-of-pocket max)이 $1,500(한화 약 170만 원)로 정해져 있기에, MRI 조직검사를 해도 연말까지 내게 청구될 비용이 총 $1,500을 넘을 수 없음을 알고 있어 나 역시 추가 검사를 망설이지 않았다. 좋은 건강보험이 든든한 뒷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주 목요일 아침, 다시 KP 벨뷰 메디컬센터 1층에 체크인을 하고 기다리니 곧 여자 방사선사가 진료 구역 문을 열고 나와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전과 같은 MRI 촬영실 옆의 처치실로 안내되어, 동의서를 작성하고 가운으로 갈아입고 방사선사를 기다렸다. 방사선사가 다시 들어와 조영제 라인을 잡으면서 검사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서, 검사 예약을 맡았던 MA가 들어와 오늘의 진료후요약지(AVS)를 먼저 주며 그 안에 포함된 '검사 후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즉시 사용 가능한 아이스팩 3개를 같이 건네줬다.
사진. 생검 전 미리 받은 오늘의 진료후요약지(AVS)와 1회용 아이스팩. 진료후요약지에 오늘 받은 검사에 대한 설명과 주의사항, 진통제 복용 방법, 검사 부위 관리 방법, 결과 통보 방법, 문제 발생 시 연락처 등이 적혀있다.
이후 처치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오늘의 조직검사 담당 의사인 Dr. L이 들어왔다. Dr. L은 내 의자 옆 회전의자에 앉아 자기를 소개하고, 오늘의 계획, 내 상태 및 검사 위치에 대해 설명하고 나의 추가 질문들에 답을 이어갔다. 검사 결과는 3~4일이 소요되며, 의학적 단어들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결과 설명을 위해 유방 담당 간호사(Breast care nurse)가 연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1회용으로 포장되어 있던 보라색 마커를 꺼내 검사할 가슴에 표시했다. Dr. L은 희망보다 사실과 계획에 대해 얘기했지만, 충분한 설명과 질의응답에 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의사는 설명을 마친 후 자신이 가져온 종이에 서명을 한 후 밖으로 나갔다.
사진. 촬영실 옆 처치실. 방사선사, MA, 의사가 순서대로 들러 필요한 내용을 설명하고 환자를 준비시켰다.
방사선사를 따라 MRI 촬영실로 이동했다. 이전에도 만났던 남자 방사선사 L과 여자 방사선사가 같이 검사 준비를 도왔다. MRI 침대에 엎드린 후, 여자 방사선사가 검사 자세를 잡기 위해 가슴에 손을 델 때마다 "I am sorry"를 반복했다. 음악을 듣겠냐는 물음에 또다시 크리스마스 캐럴을 신청했다. 잠시 후 모두가 촬영실 밖으로 나가고 검사를 시작했다. 몇 분의 짧은 검사와 조영제 주입 후 이어진 몇 분의 짧은 검사, 그러고 나서 이제 잠시 영상을 확인하겠다는 안내에 맞춰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시작됐다.
영상을 확인한 후 의사와 모든 직원들이 들어와 생검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검사 예약부터 함께 한 MA가 검사 내내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줬다. 사실, 개인적으로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누군가 임의로 내 몸을 계속 두드리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예약부터 검사 과정까지 함께 해주며 옆에 있다고 알려주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검사 위치에 맞춰 마취를 하고 생검을 준비하고 모두 나간 후 MRI를 촬영하고 모두가 다시 들어와 조직을 채취하고 마커를 삽입하고 다시 MRI 촬영을 했다. 모든 과정이 끝난 후 Dr. L이 "You did great"이라고 다독여줬다. 여자 방사선사와 MA의 도움으로 일어나 옷을 입고, 처치실로 이동해 MA가 검사 부위를 지혈하고 붕대와 반창고를 붙여줬다.
이후 가운을 입은 채로 짐을 챙겨 이미 예약해뒀던 유방촬영술 검사를 위해 MA를 따라 4층으로 이동했다. 진료/검사 구역 내부에 의료진과 검사/시술 과정 중의 환자와 물품의 이동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었다. 그동안 외래 진료와 검사를 위해 병원 건물에 들어와 움직일 때 검사복을 입은 환자와 의료진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이유, 로비에 벽난로와 소파와 그림과 멋진 조명이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검사실로 이동해 오늘 마커를 삽입한 유방에 대해 X-ray 촬영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병원을 나섰다.
사진. 진료/검사 중 의료진, 환자, 물품이 이동하는 내부 통로. 검사 중 환자는 혼자가 아니라 MA와 같은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아 이동한다. 진료/검사 구역 내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혼자 대기하거나 알아서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진. KP Bellevue Medical Center의 1층 로비의 평상시 모습. 현재는 이곳에서 독감 및 코로나 예방접종을 진행하고 있다.
주말을 지나 그다음 주 중반에 앱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수요일 오후 4시 19분에 입력된 결과를 4시 20분에 확인하기까지 여러 날을 기다리며 온갖 생각을 했다. 양성일 가능성이 높지만 악성일 수도 있는 결과를 사람을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먼저 확인하는 것은 좋은 방법일까. 설명의 언어와 공감의 표현을 입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판독 결과를 환자가 먼저 확인하는 것이 괜찮을까. 하지만, 사람을 통해 결과를 듣는다 해도 충분한 진료 시간과 환자에게 공감할 만한 여건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직접 듣는 결과 역시 냉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병리 검사의 최종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하루하루 악성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동안, 공감이나 위로보다 한시라도 빨리 결과를 확인하고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 통보에 대한 알림을 받은 동시에 KP의 앱을 열어 "세포학적 이형 또는 악성의 증거가 없음 (NO EVIDENCE OF CYTOLOGIC ATYPIA OR MALIGNANCY)"라는 구절을 보고서야 다시 정상인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화면. KP 앱으로 확인한 조직검사 판독 결과. 시스템에 판독 결과가 입력되면 환자에게 앱과 SMS를 통해 결과가 통보되었음을 알려준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 아닐 경우, 곧 병원의 전화 연락을 받게 된다. 추후 우편으로 환자가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 최종 결과지가 통보된다.
다음날 오후 2시 50분, 유방 담당 간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경쾌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확인한 간호사는 내게 좋은 소식이 있음을 알렸다(You have good news!). 검사 결과는 양성이고, 계속 고위험군 대상의 정기검진을 이어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결과 확인 2주 후, 이번 검사 결과가 정상이며 1년에 한 번 계속 MRI 검진을 받으면 된다는 내용을 담은 결과 통지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사진. 우편으로 도착한 조직검사 최종 통지서. 검사 결과가 정상이므로 1년 후 MRI 검진을 다시 받으면 되고, 비용은 보험 책자를 확인하거나 고객 서비스에 문의하도록 당부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확인한 정산 내역(EOB)에는 그동안 받은 MRI, 초음파, 유방촬영술부터 생검, 병리과 판독, 마취까지 각종 정산 항목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각종 영상 검사들은 내 보험에서 100% 커버되었고, 외래의 수술로 분류된 생검에 대해서만 $40의 자기부담금(copay)이 청구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KP 앱에서 copay를 지불했다.
사진. EOB(Explanation Of Benefits)들 중 생검 관련 정산 내역. 외래에서 진행된 생검에 대해서만 $40의 자기부담금(copay)이 청구되었다.
화면. KP 앱에서 청구 내역을 확인하고 신용카드를 이용해 바로 결제했다.
한 해 마지막 달의 2/3를 생애 처음으로 악성의 가능성을 고민하며 지냈다. 검진 결과 하나로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것 같아 두려웠다. 한국에 있어서 유방촬영술과 유방 초음파만으로 정기 검진을 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기에, 미국의 고위험 검진으로 악성을 보다 일찍 발견한다면 오히려 운이 좋은 걸까 애매했다.
불안을 멈출 수 없는 시간에 힘이 된 건 따뜻함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 희망을 말해주고, 잠깐 의자에 앉아 정맥주사를 잡고 이동할 나를 위해 덥혀진 담요를 깔아주고, MRI 통 안의 시끄러운 자석 소리에 다른 것들은 곧 잊어버릴 나에게 덥혀진 담요를 발끝까지 덮어줬으며, 검사 예약부터 검사 과정과 검사 간 이동을 한 사람이 에스코트해줬다. 내가 경험한 따뜻함과 신속함에 대해 레스토랑처럼 팁을 지불해야 하면 도대체 얼마를 내야 할까라는 내 말에, 남편은 이미 모두 들어가 있는 것(all-inclusive)이라는 의견을 냈다. 부풀어진 비용의 일부는 분명 서비스의 질과 사람들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는 미국 헬스케어의 구조를 모두가 한 목소리로 비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시스템 안의 서비스는 여전히 사람들이 애쓰며 만들어간다. 다른 나라에서 온 내가 계속 눈여겨보는 부분이다.
(이 글은 미국 간호사 16년 경력의 전문 간호사(Nurse Practitioner)인 Sarah An 님의 감수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