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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석 Jan 22. 2024

제사를 모시는 이유.

추석이라 쓰고 추억이라 읽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귀해서야 되겠나’ 예전부터 제사를 싫어했다. 사실 제사가 싫었다기 보단 제사 음식을 준비하며 밤낮 고생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그때부터 였을까,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 절을 해야 하는 것, 그들이 먹고 간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 경사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도왔다는 말을 듣는 것, 뭘 이루고 가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들의 이름에 먹칠하면 안 되는 것 등 최근까지도 ‘조상 덕 많이 본 사람들은 제사 안 모시고 해외여행을 간다’는 말에 공감할 정도로 제사는 내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종교적 의식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33번째 추석을 제사 없이 맞았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제사였다. 우리 가족은 늘 그랬듯 산소에 갔다. 경남 진해 공원묘지에 있는 산소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10년 전 사고로 돌아가신 작은 외삼촌, 2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성함이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작은 외삼촌은 생전에 천하장사 소시지를 좋아하셨다. 때문에 올해도 어김없이 제기 위에는 작은 이모가 매번 사오는 소시지가 올라가 있었다. 할머니는 건강하셨다. 하지만 작은 외삼촌이 돌아가신 이후로 삶을 잃으셨다. 삶을 잃으시니 기억을 잃으셨고, 기억을 잃으시니 건강을 잃으셨다.


2021년 10월. 퇴근 후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할머니를 뵀다. 2시간 쯤 지났을까, 엄마는 내게 할머니가 다행히 기력을 찾으셨으니 우선 부산으로 돌아가고 혹시나 전화를 받으면 당장 마산으로 올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는 두 눈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우리는 한동안 손을 잡고 31년간의 세월을 말없이 추억했다. 나를 지긋이 보시던 할머니께서 산소 호흡기를 낀 채 무엇인가를 말씀하셨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매번 틀 던 음악을 틀지 않았다. 부산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전화벨이 울렸다.


2년 후 우리는 그들이 없는 삶에 적응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매형 생겼다. 매번 산소에서 눈물을 흘리던 작은이모와 누나의 표정이 올해는 밝았다. 소시지만 보면 삼촌이 생각나 뜯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잘 먹었다. 조촐하게 그들을 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그러다 할머니 얘기가 나왔다. 우리 할머니는 욕을 잘했다. 하지만 기억을 전부 잃는 순간까지도 우리에게는 욕을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평소에 딸들을 보면 욕을 하다가도 며느리나 사위, 손자들을 보면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 하셨다고 재밌게 말씀하셨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때를 추억하며 웃었다. 웃음이 그치자 차 안에는 잠깐의 고요함이 찾아왔다. 잠깐의 순간이지만 우리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잠깐의 순간동안 우리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잠깐의 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재밌는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내게 마지막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던 걸까. 아직도 그 답은 모르지만 할머니는 기억이 모두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들이 제사상을 거하게 차리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이런 생각을 뒤로하고 창문을 열자 햇빛이 손바닥을 스쳤다. 마지막으로 잡았던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손길은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마음속으로 누군가에게 말했다. 산 사람들은 살아갈게요 떠나신 분들을 추억하면서요.


여느 때와 다름 없던 추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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