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의 기억은 하나의 ‘세계’이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누군가의 세계 속에 또다른 ‘나’로 존재한다.
주인공 ‘톰’은 치매를 앓고 있어 딸 ‘소피’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의 55세 생일날, 소피는 그에게 그날 입을 자켓과 주머니 속에 든 빨간 넥타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톰은 딸 소피를 그의 아내 ‘이사벨라’로 착각하고, 자켓에 든 넥타이를 찾다가 옷장에 놓인 이사벨라의 빨간 드레스를 발견한다. 이후 무대 중앙에 놓였던 옷장이 좌우로 펼쳐지고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 중앙에 놓였던 옷장은 톰의 세계이다. 톰의 세계에 옷들이 많이 걸려있듯, 우리의 세계 속에도 많은 옷이 걸려있고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톰은 그 세계에 걸려있던 추억, 즉 교복(자켓)을 꺼내입는다. 그리고 순수했던 그의 어린 시절과 함께 이사벨라를 다시 만난다.
이 공연은 간이 무대와 그 앞의 공간을 나눠, 톰의 세계와 현실(치매를 앓고 있는)을 분리한다. 톰은 간이 무대 위에서 이사벨라, 친구들과 함께 교감하지만, 간이 무대 위에서 내려오면 옷장이 닫히고 현실로 돌아온다. 이내 그가 다시 옷장을 뒤지자 그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며, 이 공연은 치매를 앓고 있는 톰의 상태를 시각화한다.
톰의 세계는 아름답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지만 이사벨라와 함께 자전거도 타고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그의 세계는 시간이 흐른다. 간이 무대 위, 대도구(의자와 책상)를 이용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역동적인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톰의 행복했던 세계가 보여진다. 톰이 무대에서 내려오면(현실로 돌아오면) 그는 옷장을 더 세차게 뒤지며 그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톰과 이사벨라 사이에서 소피가 태어나자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이사벨라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톰은 그의 세계 속에서 몸부림 치지만 이사벨라는 보이지 않는다. 톰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의 세계는 요동친다. 톰은 그의 세계 속에 있는 이사벨라를 쫓지만 이사벨라에게 닿지 못한다. 그래도 톰은 달린다 이사벨라에게 닿기 위해. 옷장에 걸려있던 모든 옷들이 던져지자 톰은 현실로 돌아온다. 소피가 그의 케익을 들고 나오자 이사벨라로 착각했던 그녀를 정확하게 ‘소피’라고 부르며 공연이 끝난다.
치매를 앓고 있던 톰의 세계는 사라져간다. 톰은 사라져가는 그의 세계에서 이사벨라를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비워진 옷장을 통해 그녀 또한 그의 세계에서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중한 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그 존재를 다시금 인식한다. 어쩌면 이 공연은, 사라져가는 이사벨라를 쫓는 톰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세계에서 잊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연을 보는 중 눈물이 났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탕으로 예술을 본다. 55세의 톰을 보니, 내 세계 속에 살고 있는 63세의 그가 떠올랐다. 33년간 제멋대로 살아도 언제나 나를 응원해준 사람.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못 받아도 늘 내 번호를 ‘나의 희망’이라고 저장해둔 그 사람. 63년간 자기 것 하나 없이 가족을 위해 몸바쳐 온, 내 세계에서 가장 크지만 잊고 살았던 그가 자꾸 떠올랐다. 그와의 카톡방을 올려보니 그가 먼저 보낸 ‘아들 뭐하노?’라는 카톡이 셀 수 없이 보였다. 그의 세계가 크던 작던, 그는 언제나 그의 세계 속에서 나를 기억했다.
이 작품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이 작품이 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썼다.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잊지말자.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우리 세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