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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로직의 문명사적 기원

by 전하진

살림의 철학은 단지 생태주의나 환경보호의 실천윤리로 환원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 문명사의 한 축을 이루는 ‘순환적 생명 로직’의 계보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한민족은 인류 여러 문명 가운데서도 드물게 정복이 아닌 살림의 로직,
즉 생명과 관계의 조화를 중심으로 문명을 전개해 온 사례다.


유라시아 대륙의 변두리, 사계절이 뚜렷한 반도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리듬과 공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생태조건이었다.
이 환경 속에서 한민족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분리된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유기적 존재로 보았다.
이로부터 ‘홍익(弘益)’—널리 인간과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윤리—가 형성되었고,
그 윤리는 곧 살림의 문명 로직으로 정착되었다.


반면 서구와 중동 문명은 대체로 자원이 한정된 사막과 대평원에서 발전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정복과 통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자연을 대상화하는 분리적 사유 체계가 철학의 주류가 되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 뉴턴적 기계론, 근대 자본주의의 소유 로직
모두 이 같은 문명적 토대 위에서 등장했다.
즉, 서양의 문명은 ‘존재의 철학’이라면,
한민족의 문명은 ‘관계의 철학’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침략과 재난 속에서 한민족은
정복이 아닌 회복과 재생의 방식으로 문명을 지속시켰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마을을 일으키고,
불타버린 논밭을 함께 복구하며 공동체를 재건했다.
이러한 반복된 회복의 경험은 생존을 넘어
살림의 회복력(Resilience)을 문화적 DNA로 새겨 넣었다.


따라서 살림로직은 단지 한 지역의 문화가 아니라,
정복문명의 대안으로서 순환문명의 원형을 품은 사유이다.
한민족의 ‘살림과 홍익’ 의식은
자연과 인간, 개인과 공동체, 물질과 정신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생명망으로 보는 문명적 통찰의 결과이다.
이제 인류가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한계를 맞이한 지금,
이 오래된 살림의 로직은 미래 문명을 재설계하는 핵심 원리,
살림자본주의(Salim Capitalism)의 철학적 근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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