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썼지만 작가 '지망생'입니다.
직업의 자부심은 어디서 기인할까? 가치에 따라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 누구도 소득을 빼고 직업을 논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으니까. 잠깐 딴 소리를 하자면 학회에 처음 나갔을 때, 교수라는 직업도 사석에서는 돈 버는 방법에 열과 성을 다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소 놀랐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놈이 “돈 욕심 없다.”라고 말하는 놈이라지.
첫 강의를 나갔을 때, 학생들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그 말에 너무 창피해서 제발 내 수업에서 만큼은 교수님이라고 말하지 말고 “강사님”이라고 부르라 했다. 학생들은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OT에서 전임 트랙, 비전임 트랙, 시간 강사, 연구교수 등등 교수 체계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까 만약 내가 전임 강사가 아니라 겸임 강사였으면 강의실 안에서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 입으로는 용어는 정확히 해야 한다고 했지만 발로는 자격지심이었다. 왜냐면 그때 나는 낮에는 시간강사를 하고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었으니까.
며칠 전에 웹소설 매니지먼트에 취직한 10 학번 아래 후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작가들 관리하는 게 힘들다는 푸념을 들어주었는데 그러다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실은 작년에 웹소설을 썼어.”
후배는 내 얘기에 흥미를 가졌고 제목, 내용 등등을 물었다가 결정적인 질문을 했다.
“유료연재 하셨어요?”
“응. 85화 유료 완결까지 했지. 그 유료화는 쉽더라. 그건 다 해주던데?”
후배는 그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그래서 결정적인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연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곳도 유튜브만큼이나 승자독식이 정의인 곳이다. 지망생 커뮤니티에 가보면 무료 연재에서 1페이지를 먹지 못하면 접으라는 글이 빽빽이 달리는 생태계다. 즉 유료화는 쉽다. 웹소설은 지면소설과 다르게 인쇄할 필요가 없어서 출판사가 물어야할 매몰비용이 없다. 당장 나조차도 5화만에 유료연재 제의가 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데 알아서 유료 순위권에 올라오기 전까지 출판사는 내 글에 관심이 없다. 그걸 아는 웹소설 출판사 후배는 내게 수익을 물어보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다르다.
“제가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어요.”
“진짜? 얼마 벌었어? 그거 요즘 핫하다며 나도 연재 해보고 싶은데 글을 못 써서.”
“그냥 쓰면 유료화는 다 해줘요.”
“그럼 이제 작가님이야? 한영 씨는 글 잘 쓰니까 많이 벌겠네.”
“그냥 용돈 벌이 정도죠. 작가는 무슨.”
“그래도 글로 돈 벌면 작가 맞지.”
차마 말 못한 얘기가 있다.
연재를 막 시작했을 때는 인기가 좋았다. 글을 올리면 하루 종일 내 글이 무료 3위에 랭크되어 있었고 유료제의가 왔을 때는 집사는 꿈은 꾼 건 아니지만 ‘작가’라고 명함을 내미는 상상을 하느냐 잠을 설칠 정도였다. 유료화로 넘어가서 순위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10위 안에는 버티고 있었다. 퇴근하고 쉬지 않고 죽어라 쓴 글이니까 적어도 배달음식은 마음껏 시켜먹을 수 있을 수입을 기대 했다. 하지만 ‘프로모션’의 존재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니까 내 글의 조회수는 프로모션으로 본 ‘무료’ 연재였기 때문에 원고료가 되지 않았다. 5만원은 그때 번 돈이었다. 그 뒤로 여러 문제로 일상이 붕괴되었고 이석증과 정신과 치료로 연명했다. 연재를 쉴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중단한 글은 좀처럼 의욕이 나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났다. 출판사에서 연재중단을 할 것인지 의사를 물었는데 그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예전에 웹툰 연재를 중단 당한 적이 있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를 어떻게든 내 호적에 올려야 했다. 그건 작가로서 의무라 생각했다. 의무. 나는 아직도 그런 뜨뜻미지근한 걸 믿고 있었다. 그리고 독자 3분께서는 다시 내 글을 찾아주셨다. 매일 적립되는 150원을 응원 삼아 결국 소설을 완결 시켰다.
“안녕하세요. 작가 한영입니다.”
그날 꿈을 꾸었다. 큰돈을 버는 꿈이 아니라 작가라고 가족들에게 명함을 넘기는 내용이었다. 딱 그날만 꾼 꿈이었다.
여전히 나는 작가 ‘지망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