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태한남의 우화
올 초 7번째 연애가 끝났다. 이별도 여러 번 겪고 나니 이별에서 오는 아픔은 없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서로 천천히 사랑하는 감정이 식었고 자연스럽게 이별했다. 사내연애였지만 비밀 연애였기에 헤어지고 나서도 우리는 형태적으로 쿨 했다. ‘일과 thㅏ랑’은 구분할 나이었으니까. 문제는 사랑이 식은 것이 원인였지만 우린 구조적인 한계를 이별의 근거로 내세웠다. 바로 결혼이었다.
나는 구여친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와 결혼 할 수 있었다. 꼭 연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구여친은 나와 참 많은 것들이 맞았다. 우린 헤어질 때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물론 반드시 마냥 좋아서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 헤어진 김에 고백하자면 사실 내 나이 때문에 더 이상 누굴 만나기 힘들 거란 생각도 있었다. 햇수로 3년차가 되었을 때, 나는 34살이 되었다. 이제는 이 사람과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은 절대 만날 수 없다는 직감이 왔다.
‘남자의 나이가 와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상한 와인이었다. 12년 동안 내가 저지를 가장 큰 실수는 6,000만 원짜리 인문학 박사학위였다. 환불도 안 되는 이 종이 쪼가리를 얻기 위해 나는 12년이라는 청춘과 학자금 대출 6,000만원을 지불했다. 불우한 가정에서 정말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빚만 6,000만원 거기에 남들 부러워하는 곳에 취직도 못했다. 단기 계약 행정직으로 하루하루 먹고 살면서 그래도 밖에 나가면 ‘박사’. ‘평론가’ 소리를 듣는 빚 좋은 개살구였다.
회사에서 한 남자직원과 친해졌다. 진짜 조심스럽게 어떻게 결혼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그냥 모르고 하면 돼요.
라는 답을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사랑만 보고 결혼한다고? 그렇다고 직장 동료와 100분 토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알겠다고 했다. 여자 친구에게 그 얘기를 전했다. 늘 서른 전에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으니 누구보다 결혼하고 싶어 하는 아이었기에 그렇게 운을 띄워 결혼을 얘기할까 했다.
“진짜 미쳐서 하는 거지. 난 그렇게 못해. 결혼은 현실이야.”
“애 없으면 살 수 있다던데?”
“난 애 낳고 싶어.”
결혼은 현실이라 여자 친구는 꿈속에 허우적대는 남자와 결혼 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현실, 집, 결혼자금, 저축, 노후, 육아 등등... 고 얘기를 또 고스란히 다시 회사직원에게 전했다.
“그럴 수 있죠. 사실 저희도 애 포기하고 산다지만 부모님 모실 일 없는 게 꽤 커요.”
“네?”
“양가 부모님 모두 교사여서 노후 준비 걱정이 없거든요. 그래서 용돈도 드릴 필요 없어요.”
그렇구나. 이들 부부에게 책임은 오직 결혼서약 뿐이었구나. 부모님은 생각도 못했다. 당장 나도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는데 이 문제가 구여친도 똑같았다. 그 역시 부양해야할 편찮은 어머니가 계셨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의 합의를 찾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약 1년이 되었을 때 이별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구여친 부서장과 우연히 만났다.
“한영 씨, 얘기 들었어? OO씨 결혼 한다던데. 둘이 친하지? 남자 어떻게 만났대?”
“글쎄요. 저도 남친 얘기는 안 나눠봤네요.”
“사귄지 두 달 밖에 안 됐는데 빠르네. 정말 둘이 사랑하나봐.”
“네, 남자친구 분이 정말 좋은가 봐요.”
“그러게 건축 설계사라 했으니 직업도 좋고... 난 한영 씨랑 사귈 줄 알았는데 사람 인연이 따로 있네.”
“그러게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더 늦기 전에 자기 생존방식에 따라 자신과 자기 가족을 지켜줄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상페위기 인문학 박사가 성공하길 기다리느니 차라리 더 늦기 전에 손절치고 다행히 서른 전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를 잡게 되었으니 그는 이 사회에서 도태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도태한남이 우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