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2022년이 시작하자마자 나는 도망치다시피 연구소를 나와 모 대학의 산학협력단으로 취직했다. 작년에 나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년 동안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강사로, 밤에는 편의점 알바를 병행하며 근근이 먹고 살다가 친한 모 교수님 덕분에 한 연구소를 소개받아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구소의 참맛을 보았고 정신과 상담을 받다가 못 버티고 이곳으로 이직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또 다시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꽤 진지하게 하고 있다. 시작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거리가 먼, 회사에 올인하고 있는 내 모습 때문이었다. 도리에 어긋나는 걸 알지만 나는 지금 회사는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따로 준비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내다 보니까 주말에 방전이 되어서 내 커리어를 위한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게 퇴사를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였다.
마음을 먹으니 모든 현상들이 퇴사하라는 계시처럼 들렸다. 하루는 학부 교수님 부친상에 갔다가 다른 교수님들을 뵈었는데 저마다 응원이라는 명목으로 한 마디씩 하셨다.
“김 박사,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 커리어에 도움 되는 곳에서 일 해야지.”
“김 박사, 그러면 이제 강의는 아예 안하고 거기서 머물 거야?”
다음 날에는 평론가 모임에 나갔다.
“평론가님은 그러면 이제 강의 안 하실 건가요?”
“연구는 계속 하실 건가요?”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정말 힘들다. 남들은 관심의 표현이겠지만 나는 늘 속으로 묻곤 한다.
‘조급한 것인가, 늦은 것인가.’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 별거 아닌 돌멩이에도 철썩철썩 물이 넘친다.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사는 게 괴로워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그게 틀린 것 같다. 한심한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걸까?
이곳에 입사를 할 때 원래 계획은 1년 정도 가볍게 일하면서 연구논문을 쓰고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 그게 커리어가 되어서 어디 대학에 가서 강의를 구할 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집에 돌아오면 방전된 나를 충전하기 바빴다. 스트레스에 폭식을 하고 바로 잠들고 출근하고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게 살고 있을까?’ 라며 자책하다 밤을 새곤 했다. 그렇게 반년을 보냈다. 그래서 이제 퇴사하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한 대사가 떠올랐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逃げ出した先に楽園なんてありゃしねえのさ)
만화 <베르세르크>의 유명한 대사가 정수리를 관통했다. 퇴사의 결심은 상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문제이기도 했다. 내 첫 직장은 광고회사였다. 1주일에 하루 집에 가는 말도 안 되는 근무환경에서 이건 아니라며 1달 만에 퇴사를 했다. 두 번째 직장은 출판사였다. 실질적으로 회사는 이종조카인 부장이 경영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대표가 업무 지시를 내려도 언제나 부장 선에서 업무가 수정되었고 나는 그 오더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 반 만에 퇴사를 했다. 세 번째 직장은 모 대학 산하 교육관련 연구소였는데 산학협력단도 처음 생겼고 사업도 처음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PM은 늘 나중에 하자며 잠수를 탔고 모든 결정과 행정은 내가 했고 책임져야 했다. 그러면서 월급은 또 최저시급이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 이정도 케이스면 꾸준히 버티지 못한 내 문제로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다. 4번이나 별로인 회사를 만난 확률이 클까, 4번이나 적응하지 못한 한 사람이 문제인 확률이 더 클까? 내 문제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은 곳에 이직하는 것도 아니라 지금 회사가 별로 라서 그만두기엔 나는 이제 도태한남이 되어버렸다. 어디를 가더라도 또라이는 존재한다. 무심하게 흘려야 한다. <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노래처럼 퇴근 후 나의 커리어를 위해 의식적으로 회사의 스트레스는 회사에서 버리고 와야 한다. 이렇게 퇴사 마려운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