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만났다
어릴 때부터 나는 개를 쉬지 않고 키웠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 7살 때부터였으니 한 6마리는 거쳤던 것 같다. 명분은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나와 동생 때문이었고 명동에서 근무하시던 아빠는 충무로에 들려서 강아지를 분양받아 오셨다. 그리고 늘 강아지가 다 크면 ‘개를 제대로 못 키운’ 나와 동생 때문에 파양했다. 그래서 강아지가 떠날 때마다 내 책임이라는 죄책감이 쌓였고 나는 개를 절대 안 키우기로 결심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본인이 다 크면 골치 아프니까 파양하고 또 귀엽다고 데려왔으면서 진심으로 초등학생, 중학생인 애들이 정말로 개를 책임지고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데려온 건가 싶다. 그 후 절대로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나는 하지라는 말티푸 6살, 꿀이라는 푸들 5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오늘은 내 자식인 하지와 꿀이에 대해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하루는 명절 때 연락정도만 하는 지인이 갑자기 우리 강아지들이 보고 싶다고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너무 뜬금없어서 알겠다고 말하고 그를 만났다. 설마 했는데 그는 15살 된 강아지가 얼마 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말이 안 되는 거 아는데 나는 우리 엄마가 돌아가셔도 그만큼 슬프지 않았을 거야.”
라고 그는 말했다.
이해한다. 실제로 그의 부모님은 안녕하셨으니까 그만큼 개를 잃은 상실감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강아지라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는 말을 이었다.
“너희 둘째 얼마 전에 교통사고 났다며 그래서 괜찮은가 한 번 보고 싶더라.”
얼마 전에 새벽에 산책을 나갔다. 12시가 넘어 교통신호는 점멸등으로 바뀐 상황에서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반대편에서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를 무시하고 그대로 밟아 둘째인 꿀이가 치이고 말았다. 우회전도 아니고 맞은편에서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밟고 올 줄 몰랐다. 천만다행으로 10분 거리에 24시간 동물병원이 있어서 꿀이는 새벽에 급히 응급실에 간 후 다음날까지 입원을 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잘 알겠지만 대기실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면 온갖 불안한 생각이 다 든다. 동물에게 딱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듣고 싶으냐는 질문에 “아파.”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다는 말처럼 동물이 아프면 대부분 정말 악화 될 대로 되어 온 상황이다.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부담되는 진료비(다행히 나는 가해자 대물보험으로 처리했다.) 등등 나는 몇 점짜리 견주인가 스스로 되묻게 된다. 천재일우라고 할 만큼 꿀이는 큰 문제없이 무사히 퇴원했다. 다시 원래 시간으로 돌아와 그는 아주 듣기 좋은 말을 했다.
“너희 강아지들 엄청 행복해 보이더라. 애들이 표정이 밝아.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나 봐.”
“당연하죠. 산책을 매일 1~2시간 정도 월 28일 나갑니다. 술 마시고 힘들어도 나갑니다. 비오는 날 빼고 매일요.”
“안 힘들어?”
“힘들죠. 그런데 얘들은 하루 종일 산책 나갈 시간만 기다려요. 일단 귀찮아도 나가고 생각해요.”
“아무리 그래도 너도 네 생활이 개보다 우선이면 안 되지. 개를 키우면서 너도 행복해야지.”
“저는 그 생각이면 개를 처음부터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맞는 말이네... 갑자기 우리 개한테 너무 미안하다.”
“개그맨 이경규가 얼마 전에 개가 죽었대요. 그런데 이경규가 그러더라고요.”
“괜찮아요. 호상이었어요.”
본인의 슬픔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될까봐 한 말이겠지만 가족이 죽었을 때 호상이라고 말할 정도면 그는 얼마나 반려견 ‘남순’에게 최선을 다했던 걸까. 우리 개가 행복해 보인다지만 나는 개를 키울수록 행복감보다 매일 미안함이 더 커진다. 더 같이 못 있어주고 더 좋은 음식주지 못하고 아프지 않도록 지속적인 검진도 못해주고 있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와 하지, 꿀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났다.
하지는 전 여자 친구 개였는데 선물로 내가 분양받아 주었다. 태어난 지 3주 밖에 안 되었을 때, 하지는 첫 주인을 만났다. 병원 간호사였던 첫 주인은 하지를 분양받자마자 케이지에 넣고 휴가를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휴가가 끝나자 하지는 3교대 주인의 일정에 맞춰 단칸방에서 매일 혼자 지내야 했다. 첫 주인은 이건 아닌 것 같다며 하지를 파양을 희망했고 전 여자 친구 선택에 의해 하지와 만났다. 이후 하지는 전 여자 친구 집에서 키우다가 우리가 동거를 시작하면서 2년 동안 셋이 살았다. 그리고 우리가 헤어질 때, 전 여자 친구는 하지를 대신 파양해달라고 말했다. 2살짜리 개를 어디다 파양 시키라고... 갑자기 또 아빠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냥 내가 키우기로 했다.
꿀이는 동거 중에 하지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한 마리를 더 분양받자고 얘기가 되어 찾던 중에 한 펫샵에서 우연히 만났다. 꿀이는 유리장에 전시도 안 되어 있는 아이었다. 4개월이 넘도록 분양에 실패해서 거의 창고 쪽 케이지에 방치되어 있는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 거의 떨이처럼 받아왔다. 털은 다 엉켜있었고 냄새는 지독했다. 사람이 손만 대면 물 정도로 꿀이는 며칠 동안 경계를 했다. 그랬던 애가 지금은 만나는 사람마다 제발 만져달라고 엉덩이를 드밀고 있다.
얘들과 만나 내 삶이 더 무거워 진건 사실이다.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셋이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 나와 내 동생을 보는 것 같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굉장히 좋은 조건의 근무가 왔지만 개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의 샘이 했던 말을 빌려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지만 어쨌거나 우린 만났다. (I know. It's all wrong. By rights we shouldn't even be here. But we are.) 만났으니까 계속 함께 해야 한다. 원래는 또 아빠를 언급하며 아빠완 다르게 끝까지 책임지고 어쩌고 하려고 했는데 그냥 운명이라 생각해야겠다. 가족끼리 득과 실을 따지고 의미를 부여하진 않잖아. 그냥 우리는 이유없이 함께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