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생각정리 넷
요즘 실패의 경험이 잦아졌다.
다행히도 삶을 뒤집어엎을 만큼의 문제는 아니고 하루하루의 사소한 해프닝쯤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 괜히 올해 초 재미 삼아 뽑아봤던 토정비결을 다시 들춰봐야 하는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분명 하반기는 좋다 했던 것 같은데.. ㅎㅎ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삐끗.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도 삐끗. 나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고 삐끗거리면서, 무의식 깊숙한 곳으로부터 인정에 대한 욕구가 옷자락 잡든 내 마음을 움켜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충분히 인정 욕구의 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싶었는데 ㅎㅎㅎ
나는 아직도 저항하고 버텨야 했고, 심적으로 지칠 때가 되니 인정에 대한 욕구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전전긍긍한 불안함으로 얼굴 밖에까지 흘러내리기 일 쑤였다.
1시간가량 퇴근길에 핸들을 붙잡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동안 주변에는 나를 인정해 주는 소리로 가득했다. 타성에 젖어서 그들의 단어와 문장이 곧이곧대로 나를 정의하고 수식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지도 모르고.
기어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니, 얼굴히 후끈거리기도 하고, 스스로가 혐오스럽기도 했다가, 이제는 측은한 마음도 들어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
어휴,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
집에 도착하니 네 살배기 우리 아들이 곤충책을 집어 들고 오늘 읽은 내용을 자랑하기 바쁘다.
요즘 곤충책은 왜 이렇게 과학적이며, 왜 이렇게 사실주의에 입각하는지... 내용도 내용이지만 스티커가 실제 곤충 사이즈에 맞추어서 나오기도 하나보다...
그러다 문득 나비에 관한 책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번데기였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것으로부터, 애벌레가 번데기에 들어가면 등짝에 날개가 돋아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형체도 없이 죽처럼 되었다가 하나씩 나비의 모습으로 분화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오오.. 쇼츠가 중독만 일으키는 줄 알았는데 이런 유익함이 ㅎㅎ
애벌레에서 나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번데기의 시간에서 애벌레는 자신을 정의하는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되돌리고서는 새로운 정체성을 하나씩 재조립하는 성숙의 단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이걸 우화라고 하더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야 평생의 숙제라 치더라도, 최근에 마주하는 소소한 실패의 경험들은 어쩌면 나에게 도 번데기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위축되게 할 것이 아니고 타인을 통해 수식하고 가꾸어 오던 것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온전히 나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
나는 지금 번데기의 시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