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겨울, 어떠한 계기와 또 어떠한 신묘한 상황에 이끌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시클럽에서의) 그 많은 뉴페이스들 중에서도 태한과 연지를 만나 친구가 되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와는 전공도 아예 다르고, 성격도 셋이 비슷한 듯 딴판인 데다가, 태한과는 심지어 나이도 학번도 같지 않은데 신기하게 우리는 자주는 아니어도 몇 마디 시답잖은 농담과 접점은 거의 없어 보이는 일상 얘기를 공유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차례로 사회인이 되었고, 이제는 각자의 바쁜 생활에 일 년에 두어 번밖에 얼굴을 보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우정은 만남의 빈도가 아닌 깊이라는 것을, 침묵조차도 편안해진 셋이 된 지금은 구태여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한겨울 빙판길에 넘어지지 말라고 어느 고마운 이가 새벽녘 눈길을 무심한 듯 다정히 쓸어주듯, 내겐 연지나 태한이 꼭 그랬다. 그 언젠가 내게 가장 난해한 주제가 나 자신이었을 때, 마음이 아무렇게나 툭툭 꺾일 것 같을 때, 가끔은 이상하리만치 성격도 취미도 생활 반경도 다른 둘이 가장 먼저 생각나곤 했다. 그냥 무심히 떠나보낼 수도 있던 어린 날의 감정들을 충분히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둘은 알게 모르게 곁을 든든히 지켜주었고, 그래서 내 이십 대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완성할 수 없었다.
오랜 벗의 행복이 곧 내게도 큰 행복이라는 것을, 따뜻한 관계는 진부한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나는 또다시 느꼈다.
좋은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나 보다.
좋은 사람인 언니와 오빠가 둘일 때 더 빛나는 만큼, 두 사람이 오래오래 뭉근하게 따뜻하기를.
언니 오빠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2021 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