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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긴 여행 끝, 잠시 스쳐간 에티오피아 (끝)

깔끔한 남미 여행의 마무리

by mong

20250309 ~ 0310(26일차)

남아메리카 - 브라질 - 상파울루

아프리카 - 에티오피아 - 아디스아바바(공항)


아쉬움도 없이 이제 남미를 떠날 차례. 한밤 중 먼 고국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아직 가볍다. 후회 없는 여행을 해서 그런가. 다만 탑승 시간까지 남아 있는 긴긴 시간을 공항에서 어떻게 보낼지는 아직 남아 있는 숙제다. 남미 최대 허브공항답게 이곳은 커도 너무 크다. 터미널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 굳이 걸어보고 싶다면 터미널 투어를 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내가 해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항공편은 새벽 1시인데 해지기 전에 도시를 떠났으므로 공항에는 매우 일찍 도착. 수속 카운터가 열리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카운터 번호도 아니고 카운터의 무려 터미널이 이곳저곳으로 바뀌어 괜히 미리 가 있으려다가 정말 말 그대로 헛수고를 몇 번이나 했는지. 비행기에서 얼마나 푹 자려고 수속 전 들고 있는 모든 짐을 가지고 남은 체력을 끝까지 다 써 버렸다. 어휴! 우여곡절 끝에 출국 수속을 마치고 찾은 라운지는 무언가의 오류로 입장 불가. 긴 남미 여행보다 오히려 공항이 아주 스펙터클하다. 안 좋은 쪽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한다. 다행히 비행기는 아주 쾌적하다. 이제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실감 나기 시작하며, 영화 같았던 남미에서의 약 한 달간 장면들이 스윽 지나간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엄청난 인파의 아디스아바바 공항. 아프리카 허브 공항의 면모를 보인다.

상파울루에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는 가장 빠른 길을 선택했다. 바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경유 항공편. 지구 반대편을 일직선으로 그어 최단 거리로 한국 땅을 향한다. 이것이 생소한 항공사인 에티오피아 항공을 고른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이라니. 운이 좋으면 스톱오버도 가능하지 않을까 했었다. 물론, 남미 대륙 하나로도 시간도 체력도 부족할 뿐더러 또 관광비자도 따로 필요하다. 볼리비아 비자로 쩔쩔맸던 것을 생각하면, 어후 별로 투입하고 싶지 않은 노력임에 분명하다. 에티오피아 항공과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의 간접 경험으로 만족해야겠다. 처음 보는 에티오피아인, 그러니까 에티오피아 항공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꽤 인상적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전체적으로 체형이 머리가 작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하다. 전형적인 모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승무원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것 같고. 인상적이다. 처음에 에티오피아 항공의 불친절한 서비스 등에 대한 불만들이 좀 있었으나 나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평범한 해외 국적기로, 타국가들의 국적기와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생소한 항공사로서, 또는 더 보기 드문 아프리카 항공사라는 점에서 일부 편견도 작용했을까? 실제로 그런 불편함이 있다가 개선됐을 수도 있다. 알고보니 에티오피아 항공은 의외로 인천 - 도쿄 나리타를 자주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이미 꽤 알려진 항공사였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인천, 도쿄 노선을 각각 확보하지 않고 아디스아바바 - 인천 - 도쿄 이런 순으로 설정했다. 아마도 수요가 각각은 안 나오겠지. 딱히 저렴한 편도 아니고 생소한 이 항공사를 도쿄 왕복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수하물이 2개까지 추가금 없이 포함된다는 것. 장거리 노선의 일환이니 짧은 구간 이용 고객이 혜택을 같이 본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짐 많은 사람들에게는 꽤나 괜찮은 선택지임에 분명하다.


그냥 대기하는 중에도 아주 흥미롭다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는 다들 들어봤겠지만 아디스아바바라는 아주 생소한 이 도시는 사실은 남미의 상파울루와 아주 비슷하게도 아프리카에서의 위상을 가진 도시이다. 물론 아디스아바바가 아프리카 최대 경제도시 또는 인구가 많은 도시냐 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붙지만, 이곳은 에티오피아 정부의 오랜 목표의 일환으로 발전 중이다. 아디스아바바 공항이 아프리카 최대 허브 공항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그 흐름 중 하나다. 그렇게 예전에는 없던 아프리카 - 한국 직항도 함께 생긴 것이다. 여전히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고 복잡한 현대사를 가져 정치 문제가 산재하지만, 오랫동안 누적한 잠재력으로 점차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는 아디스아바바에 열심히 힘주고 있다. 또 생각해보면 내륙 국가인 남미의 볼리비아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괜찮은 롤모델이 될 수 있겠다. 두 국가는 이웃 국가에게 해안 영토를 빼앗겼고, 약간 치우쳤지만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다. 볼리비아는 현재 정책적으로 상당한 고립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라파즈 편에서 말한 것처럼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상존한다.


에티오피아 항공 기내식. 매우 만족스럽다.

이번 여행 초반이었던 라파즈를 생각하니 벌써 까마득하다. 길긴 길었구나.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착륙할 때 보이는 높고 정갈한 빌딩들을 보고 놀란 나를 발견하며, 남미도 아프리카도 얼마나 내가 편견에 사로잡혔혀 있었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남미 대부분 나라들도 이랬지. 돌이켜보면 편견이 있을수록 그것이 깨지는 그 여행은 더 기억에 남는다. 아마 이번 여행도 그렇지 않을까. 여러모로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기에. 이젠 그곳도 멀어졌지만 아쉽진 않다. 생각나면 또 가면 되지. 북적한 이 공항은 무언가 낯설면서도 정겹다. 로컬의 느낌이 군데군데 물씬 베어 있다. 에티오피아가 사용하는 그으즈 문자는 얼핏 보면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는 히브리 문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아무래도 기원이 같으니 그렇겠지 싶으면서도 어떻게 읽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이 낯선 국가는 남미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로 아주 만족스럽다. 다음에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꼭 있기를. 면세점에 가서 그 유명하다는 에티오피아 원두를 좀 구매해야겠다. 이미 구비해 놓은 브라질 원두와 비교해 봐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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