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처음으로 느낀 불안한 치안
20250308(25일차)
남아메리카 - 브라질 - 상파울루
이번 남미 여행의 마지막 숙소 예약은 바로 전 도시인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였다. 여정의 정말 마지막 도시는 오늘 온 상파울루이다. 이곳에서는 숙박 없이 내일 새벽 1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상파울루는 남미에서, 아니 남반구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공항도 가장 커서 남미의 대표적인 허브공항으로 늘 이 도시가 언급된다. 상파울루 In/Out이 같은 공항(GRU)인데 숙소가 없으므로 공항에 짐 맡기는 곳 찾다가 아주 진이 다 빠질 정도다. 남미에서 가장 크고 대표적인 도시를 그것도 마지막에 방문한 것에 의미가 있지만 사실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 곳이다. 대도시라고 해봤자 출장을 온 것도 아니고 19세기 후반부터 커진 도시라 딱히 내 기준에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거대한 도시는 꽤나 많은 곳에서 언급된다. 아무래도 기업들이 남미의 사업적인 거점으로 삼거나 뉴스 등에서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슷한 위상으로서의 도시로는 아마 싱가포르, 중국의 상하이, 인도의 뭄바이 정도가 있겠다.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 오로지 경제적인 거점으로서 성장한 대도시의 관점에서 말이다. 이 도시들과 차이점은 상파울루에는 바다와 닿는 직접적인 항구가 없다는 점이다. 물류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바다가 없다? 사실 지도상으로는 바다와 아주 가까이 있지만 해안가에 커다란 산맥이 버티고 있어, 가까운 항구 도시인 산투스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 관계는 서울과 인천을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뭐 하루 있는 여행객에게 이런 것들이 뭣이 중허겠는가. 그냥 한 번 들러보는거지. 게다가 이곳은 리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치안은 늘 이슈이니 눈앞에 닥친 현실부터 마주해야 한다.
짐을 맡기고 상파울루 시내로 향한다. 커다란 이 공항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우버가 공항 안으로 못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공항 내 혼잡을 우려하여 실제 택시들만 진입이 가능한데 우버는 공유차량이지 법적으로 택시는 아니기 때문에 출입이 불가하다. 다만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공항 외부로 통하는 길에 '우버존'을 만들어 우버의 수요를 그대로 유지, 아니 확대했다. 공항에서 어플을 키면 우버존으로 안내해 그곳에서 내가 부른 우버 차량을 탑승 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칠레 산티아고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불편하나 했는데, 우버존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버를 기다리고 있고 그곳엔 카페나 음식점 등 대기자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엄청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 이렇게 치안이 불안한 도시에서 누가 지역 택시를 선호하겠는가. 결국은 우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언가 이전 남미 국가나 도시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디지털화된 모습이 브라질에서는 심심찮게 보인다. 생각해보면 남미를 벗어나더라도 꽤 한국만큼이나 디지털화가 많이 된 느낌이다. 물론 외국인 방문객인 내가 느끼기엔 한계가 있겠지만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디지털 친화적인 경향이 강하다. 아무래도 중국과 인도가 그랬듯 땅덩어리가 큰 국가들은 디지털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유선 기반 인프라는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의 첫 행선지는 마르코 거리다. 이게 정식 명칭인지도 모르겠다. 구글맵에서는 'R. Vinte e Cinco de Março - Se'로 나오는데 실제로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냥 정했다. 한국으로 치면 명동 거리 정도 느낌이래서. 상파울루는 어딜 가야 하나 생각보다 조금 고민이 되었다. 축구라도 했으면 경기나 봤을 텐데 하필 시즌도 아니었고, 별 특색 없는 이 큰 도시에 마땅히 갈 곳도 없다. 그 와중에 앞에 계속 얘기하고 있는 치안 문제도 겹쳐 그나마 가볼 만해 보이는 곳들도 제거된다. 그래서 크게 마르코 거리와 우리나라의 테헤란로 + 종로 느낌의 파울리스타 거리만 가기로 결정하게 됐다. 도착한 마르코 거리에 대한 아주 솔직한 내 심정은... 음, 인도 같다. 아무리 보아도 인도 같다. 조금 다르다면 어두침침한 인도 건물들과 다른 더 밝은 느낌이랄까. 아마 강렬한 한여름의 햇빛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인도와 비슷하다고 느낀 포인트는 사람이었다. 일단 이곳에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있다. 마치 전성기에 중국인으로 가득찬 명동거리 같은. 도로 양 옆엔 월세를 지불하는 가게들과 통로에 점거된 노점상으로 꽉 차있고, 차로는 왕복 4차선 규모지만 노점상과 불법 주차로 북적한 덕에 차량이 지나다니기 힘든 구조다. 더군다나 이 수많은 인파들이 간헐적으로 차도로 튀어나오고 하니 말이다. 정말로 이곳은 정신이 없다. 한 손에는 폰을 꼭 쥐고 이런 곳에 꼭 있을 소매치기를 본능적으로 조심해야 한다.
무언가 살 것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잘 모르겠다. 워낙 이런 쇼핑에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고 더군다나 쏙 빠진 정신에 여유롭게 구경할 의지가 도저히 생기지를 않는다. 빽빽한 상점들은 자세히 보니 상점 사이사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보인다. 살짝 들어가 보니 내부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렇게 번화했는데 이런 뒷골이 없을리가 없지. 내부는 을지로의 세운상가 건물 안과 비슷하다. 여기야 익숙하기라도 하지.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들어갔다가 누가 나를 낚아채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요구해도 다 내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곳 특유의 어두운 조명과 오래된 건물 내장재가 주는 분위기는 여전히 으스스하다. 다만 사람들의 소음으로 어느 정도 가려질 뿐. 꽤 많은 거리를 걸은 듯 하다. 메인 거리를 벗어나니 조금 한산해지는데 슬슬 배가 고프니 늘 그랬듯 길 모퉁이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노점과 실내가 연결돼 있고 한낮에 맥주와 식사를 즐기는 평범하고 허름하며 북적한 식당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내가 들어가니 갑자기 조용해지며 시선이 집중된다. 굉장히 부담스럽고 당황스럽다. 동양인은 설마 처음인 것인가. 이런 곳에선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없으니 발을 돌려 다시 갈 길을 간다.
길이 점점 한산해지는데 앞쪽에 또 다른 수많은 인파가 보인다. 알고 보니 다름 아닌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인 듯하다. 저쪽엔 사람들끼리 싸움을 했는지 앰뷸런스가 와서 응급 치료를 하고 있다. 이때 심각성을 알았어야 했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목적지였던 대성당까지 걸음을 계속한다. 갈수록 느낌이 쎄하다. 날 쳐다보는 눈빛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게 흡사 어떤 느낌이냐면 영화 인셉션에서 꿈속의 사람들이 나를 조금씩 인지했을 때 쳐다보는 눈빛과 비슷하다. 분명 모르는 사람인데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낯선 이방인을 한 번씩 쳐다보는 것. 심지어 그중 일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 나를 주시한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종착지인 대성당은 상파울루 구시가지의 가장 중심이자 최대 우범지대라고 한다. 어쩐지 갈수록 점입가경. 눈빛들이 점점 노골적인 것이 느껴진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커피 원두를 사려고 잠시 들른 마트에서 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다녀서 아마 현지인으로 착각이 된 것일까. 직접적인 접근이나 위협은 없었다. 아주 다행히도. 쓰레기봉투가 나를 살려준 것일까.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크고 멋진 대성당은 구경도 못하고 우버를 타고 재빠르게 이동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