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에 보이는 대도시의 빈부격차
20250307(24일차)
남아메리카 - 브라질 - 리우 데 자네이루
리우의 가장 유명한 해변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는 해안가에 볼록 튀어나온 곶을 경계로 각각 동쪽과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두 해변은 거의 붙어 있다. 그 얘기는 즉, 여기서 이파네마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 뭐 할 것도 없고 계획도 없고 이파네마까지 가 봐야겠다. 리우의 이 두 해변의 주위는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깔끔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즐비하고 자전거와 러닝을 즐기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흔히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광경이다. 코로나 이후로 브라질 경기가 안 좋다 하지만 남미 어느 나라보다 발전돼 보인다. 아 남미에서 그중에 견줄 만한 곳은 칠레의 산티아고 정도? 그러나 리우도 산티아고도 나는 아주 일부만 본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은 당연히 할 수 없다. 내일 방문할 마지막 도시 상파울루도 아직 겪어 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그런 외관과 달리 나는 어느 정도 긴장 상태다. 브라질에서는 언제 소매치기나 강도의 타겟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딱히 위협이 느껴지지는 않으나 오히려 모르는 위험이 더 무서운 법. 빠른 걸음으로 이파네마 해변으로 향한다. 저 멀리 보이는 리우의 상징과도 같은 예수상은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한다. 다만 저 커다란 예수상도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아주 작게 보인다. 생각보다 멀고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크다던데. 역시 혼자 다니면 잡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서 좋다. 그러니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도착한 이파네마 해변은 다르다. 코파카바나와 다르다. 솔직히 코파카바나를 가보고 다른 해변은 조금도 기대가 안돼서 일정을 바꿔야 하나 싶었는데 와보길 잘했다. 겉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가 생각한 '리우의 해변'은 이곳이었다. 가족단위 위주의 코파카바나보다 이곳은 젊은 사람들이 많아 훨씬 활기가 넘치고, 위에 말했던 리우 해변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 특히 저 멀리 보이는 공룡알 모양의 산은 정말 해변과 묘하게 조화되는 이곳의 특이점이다. 내가 리우를 떠올릴 때 예수상보다 이 장면이 지금도 더 떠오른다. 여기 해변도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이곳저곳에서는 비치 풋볼도 하며 브라질의 이미지가 그대로 담긴 모습이 내 눈에 그대로 비친다. 사실 겨우 코너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두 해변이 이렇게 다르게 다가온다니 새삼 신기하다. 또 누군가는 두 해변의 차이를 크게 못 느낄 수도. 사람 구경만 하는 것도 시간이 아주 잘 간다. 이과수나 리우나 브라질에 있는 사람들은 옷차림이 아주 가볍다. 물론 지금이 여름이기도 하지만. 시내에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물론이고 무언가 훨씬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시스루나 남녀 할 것 없이 속살이 다 비치는 옷은 말할 것도 없다. 시내도 그런데 해변은 어떻겠는가. 한국에선 남자들이 잘 입지 않는 작아 보이는 삼각 수영복은 흔하고 다들 그냥 옷을 훌렁훌렁 벗어버린다. 사실 처음에는 이곳이 나도 모르게 누드 비치였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고 그냥 사람이 많은 곳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을 뿐이다. 무슨 표현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조선 조정에서 19세기 후반에 미국으로 보낸 보빙사마냥 줄줄이 읊었는데 확실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 아닌가. 예전에 호주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해변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습하고 아주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 흥미롭다. 리우는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해변에서 한참 놀면서 보냈지만 의외로 시간이 좀 남는다. 몸은 피곤하지만 이대로 버릴 수는 없지. 해가 지기 전까지 약간 남은 시간으로 이파네마 해변 북쪽에 바로 붙어 있는 호숫가로 간다. 이곳에서 멀리서나마 예수상이 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해변과 꽤 가까운 이 이름 모를 호수는 둘레에 자전거도로와 러닝 트랙이 있어 러닝을 하는 사람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꽤 큰 호수 건너편에는 커다란 산이 있고 그 산 정상에 예수상이 작게 보인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게 보인다. 게다가 날씨는 분명 맑은데 예수상 주변만 짙은 안개가 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아 예수상의 신비인가. 페루의 마추픽추처럼 리우의 예수상도 날씨 운이 좋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호숫가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안개가 걷히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저 멀리서 어떤 허름한 한 남자가 호숫물 속으로 들어간다. 물이 그리 깨끗하지 않은데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건가 했는데 머리 끝까지 넣었다가 나오며 몸을 씻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씻을 곳이 없는 노숙자인 모양이다. 마치 그의 모습은 영상에서 본 인도 갠지스강에서 사람들이 종교의식을 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다만 뜬금없는 그 모습이 다소 충격적일 뿐. 둘레를 러닝하는 사람들과 아주 대조적인 장면이다. 건강과 몸매를 관리할 여유와 생각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과 씻을 곳이 없어 더러운 물로 온몸을 담그는 노숙자의 모습이 말이다. 아무래도 브라질 대도시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화려한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그런 불행한 삶들 말이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며 예수상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거의 5분 간격으로 관광용 헬기가 예수상 주변을 돌고 돌아온다. 수십만 원을 하는 예수상 관람 헬기는 조금 전 몸을 씻는 노숙자의 모습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이라, 그 느낌이 괴이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팔을 벌리고 도시를 품는 예수상의 방향은 부촌이고, 등진 방향은 빈민촌인 파벨라라고 한다니 그것 참 희한하고 슬픈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노숙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이곳에 대한 나의 감상은 확연히 달랐을 수도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해변과 대비되는 민낯. 빈부 격차의 모습은 어느 도시에나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히 유쾌하지는 않다. 브라질의 도시를 겪을수록 자꾸 인도에서 본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뭐 어쩌겠는가. 경제가 급성장한 나라들은 필연적으로 이런 부작용을 겪는다. 나 같은 여행자들은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단지 안타까워하며 10원짜리 양심에 가책만 받을 뿐. 브라질은 참 복합적인 감정이 들게 하는 국가다. 상파울루는 조금 다를까.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며 점점 어두워진다. 이 도시의 빛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