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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과수 폭포,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다(2)

아르헨티나에서 먼저 본 이과수 폭포

by mong

20250305(아직 22일차)

남아메리카 - 아르헨티나 - 푸에르토 이과수


아르헨티나 사이드의 이과수 폭포 공원은 루트가 다양하다.

시원한 택시에서 내리니 고온에 다습한 전형적인 한국의 여름 날씨가 나를 맞이한다. 아무래도 직전 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날씨도 비가 오거나 흐렸고, 이곳은 적도에 더 가깝다. 사실 그 논리라면 첫 도시였던 페루의 리마가 더 더웠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내륙 지역인 이곳이 더 더운 듯하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비싸게 짐을 맡긴 다음 가벼운 마음으로 국립공원으로 들어간다. 어제 남미 여행 카페에 올라와 있었던 이곳에서의 비용 후기보다 금액이 더 올랐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금액이 올라간다니. 인플레이션이 어마어마한가보다. 얼른 아르헨티나를 떠나는 수밖에. 아르헨티나 사이드의 이과수 국립공원은 다양한 코스로 걸을 수가 있다. 크게 세 가지인데, 폭포의 아래쪽을 볼 수 있는 루트(Lower Trail), 폭포 위쪽의 루트(Upper Trail), 그리고 대망의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 루트(Devil's Throat)가 있다. 악마의 목구멍은 거대한 이과수폭포 중 가장 높고 엄청난 물이 떨어져 굉음이 나는 대표 폭포이다. 이곳은 폭포의 뒤쪽으로 크게 돌아가 폭포 위로 설치된 트레일을 걷는 코스인데, 그 트레일까지가 멀어서 셔틀 기차를 설치해놨다. 또한 대부분의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아르헨티나 사이드와 브라질 사이드 둘 중 하나나 둘 다 보트 투어를 신청한다. 앞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와는 다르게 폭포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온몸이 젖는다고 한다. 다만 나는 이번에도 두 사이드 모두 보트 투어는 하지 않았다. 뭐 그렇게 젖는 것도 싫고 크게 기대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가까운 로어트레일을 먼저 갔다가 어퍼트레일 - 악마의 목구멍 트레일 순서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래에서 본 폭포가 개인적으로 더 기억에 남는다.

처음 입장부터 로어트레일의 어느 정도 구간까지는 폭포는 보이지도 않는다. 거의 정글 내의 공원을 헤매는 느낌. 습한 더움이라 그런지 걷는 것도 금방 지친다. 사람들은 거의 헐벗고 다닌다. 이미 남미의 더운지역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보기에 이상하지 않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많이 보수적이었던 것일까 생각이 들 정도. 사실 이 생각은 외국 어딜 가든 비슷하게 느껴지긴 한다. 로어트레일은 생각보다 인기가 많지 않아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폭포는 아래에서 보는 게 더 좋지 않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점점 폭포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눈에 들어온다. 오 멋있네. 하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한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넓다란 폭포 병풍이 펼쳐져 있다. 규모가 매우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멀리서 보는데도 말이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폭포 소리 그리고 웅장한 비주얼로 오감이 바쁘다. 점점 가까워지는 폭포와 그에 따른 오감의 자극 때문에 점점 정신이 없다. 로어트레일은 폭포가 내려온 아랫부분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다. 길가 옆에 흐르는 강의 지류들은 내가 정글에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나보니 조금 아쉬웠던 것은 공원의 크기를 감히 가늠하지 못하여 혹여나 뒤에 시간이 부족할까봐 로어트레일을 빠르게 훅훅 지나쳤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됐었는데 말이다.


어퍼트레일로 가면 이렇게 폭포 윗부분도 볼 수 있다.

로어트레일을 빠르게 지나서 어퍼트레일로 향한다. 폭포의 윗쪽인 이곳은 폭포 위에 설치된 트레일이 대부분인데 확실히 로어트레일보다 사람이 많다. 위에서 보는 폭포는 뭔가 색다르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광경이니. 물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폭포를 보는 것은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긴 하다. 다만 폭포 전체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말 그대로 폭포의 윗물을 보는 곳이라 아무래도 시야의 제한이 있다. 폭포의 전체 모습을 보고 싶다면 로어트레일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는 것이 나았다. 다른 코스에 비해 사람이 적어 여유롭기도 하니. 아 차라리 어퍼트레일 후에 로어트레일을 가볼 것을 그랬나? 이미 늦었다. 거꾸로 했으면 또 반대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공원에 폭포 수가 워낙 많아 이동하는 길에 작은 폭포들도 많이 보인다. 폭포가 워낙 많아 폭포에 대한 감흥이 무뎌질 때쯤 생전 처음 보는 동물들의 무리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얼핏 보면 크기부터 라쿤과 비슷해 보이는 이 동물은 주둥이가 개미핥기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색은 너구리처럼 갈색이며 꼬리는 라쿤처럼 갈색에 짙은 줄무늬가 규칙적으로 나 있어 마치 내가 알고 있는 동물들의 혼종 같은 느낌이 든다. 이들의 이름은 코아티(Coati). 이들은 인간에게 특별히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식탐이 지독하다. 해를 끼치지 않는다기보다 인간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먹을 것만 찾는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흘리거나 주는 음식들을 대놓고 구걸하는 모습은 마치 호주에서 본 주머니쥐(Possum) 같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한다. 무언가 인간보다 더 원색적인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크게 정이 가진 않는다. 아무래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런 듯. 원숭이나 도마뱀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사람 많은 곳엔 시종일관 코아티가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마지막 트레일인 악마의 목구멍은 시종일관 테마파크 같은 이곳에서 셔틀 기차를 타고 폭포의 저 뒤편으로 이동해야 한다. 말이 기차지 거의 모노레일이다. 작고 볼품 없고 승차감도 안 좋은 이 오래된 기차는 이 공원에 들어온 이상 무료로 제공되지만 제한된 좌석으로 인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탈 수 있다. 걸어가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덥고 습한 날씨에 벌써 20일이 넘어버린 여행 기간에 굳이 무리하진 않기로 한다. 한 시간이나 기다릴 것을 알았다면 앞서 지나온 로어트레일에서 시간을 더 보낼 걸 후회되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여유도 나쁘지 않다. 긍정적인 마인드. 나같이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데 상점을 제외한 나머지 곳들은 모두 밖에 있어 더위를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쉘터는 설치돼 있어 햇빛을 직접 맞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주 자연스럽게 상점에서 파는 시원한 물이나 음료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서울의 여느 산 정상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막걸리를 사는 것처럼 여기서 사면 엄청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본능은 어쩔 수 없다. 전략적 배치가 아주 잘 맞아 떨어졌다. 콜라 한 병을 사기 위한 긴 줄에서의 인내와 5천 원이라는 비싼 가격도 이 시원한 첫 목 넘김의 쾌감 하나로 그 정도의 값어치를 했다. 더위가 약간 가시니 코아티 무리들이 몰려온다. 얘네들도 무언가 타이밍이 있나보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귀엽지만 귀엽지 않은 코아티 무리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댄다. 누군가는 먹이를 주며 유혹한다. 특별한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들과 먹을 것을 원하는 코아티 무리들 간의 아주 알맞은 거래가 아닐 수 없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코아티 무리의 이상한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작게 들리는 폭포 소리가 한데 섞여 복작복작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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