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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Park Mar 15. 2019

영국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실

계몽의방(Enlightenment Gallery)

200년 된 전시실을 걷다

영국 박물관은 전 세계 최초의 공공 박물관입니다. 1759년 영국 박물관은 계층을 불문한 '모든 학구적이고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all studious and curious persons)'을 위해 개관했습니다.  영국 박물관의 컬렉션은 가히 세계 최고이자 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박물관은 국가와 세계를 위해 인류의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모든 유물을 소장하고, 보존하며, 연구하는 공간입니다. 영국 박물관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과 각 문화의 우수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의 영국 박물관 정면

영국 박물관은 개관부터 한 공간에서 전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계획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영국 박물관에 가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지역의 몇 천 년의 시간을 반영하는 중요한 유물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한 공간에 전 세계를 모아 보인다는 계획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자신감과 오만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18세기부터 영국 박물관은 끊임없이 증축되어 왔습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소장품을 감당하기에는 원래의 박물관 공간이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방문하는 영국 박물관은 2000년대 이후 내부까지 리노베이션 된 새로운 영국 박물관입니다. 

격자무늬의 천장으로 유명한 영국 박물관 로비의 내부

내부가 새롭게 단장된 영국 박물관이라고 하더라도, 19세기 전시실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실인 '계몽의 방'입니다. 계몽의 방은 영국 박물관에 입장하자마자 1층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로제타 석, 람세스 2세의 흉상, 아시리아의 사자사냥 등 너무나 유명한 작품들이 1층에 몰려 있어서일까요, 영국 박물관의 그 어느 공간보다 영국 박물관다운 계몽의 방에는 언제나 다른 갤러리보다 한산한 편입니다. 

계몽의 방 내부

높이 12m, 폭 9m 그리고 넓이 91m로 끝에서 끝까지 벽 하나 없이 길게 트인 방에는 중국의 도자기, 신비한 괴석, 이집트 유물, 종교 경전들, 식물 표본들 등 전 세계에서 수집한 신비하고 귀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전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공간에 골동품처럼 보이는 진열 케이스들 그리고 그 안에 잘 정돈되어 있는 신기한 물건들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발걸음을 옮기면 오래된 나무 바닥에서 삐거덕대는 소리도 납니다. 인공적인 조명도 최소화하여 커다란 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매 방문 때마다 시시각각 분위기가 변하는 계몽의 방은 영국 박물관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입니다.


19세기 계몽의 방은 영국의 군주였던 조지 3세(George III, 1762-1830)의 도서 컬렉션의 기증과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계몽의 방이 아닌 '왕의 도서관(King's Library)'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1760년부터 1820년까지 대영 제국을 통치했던 조지 3세는 너무나 유명한 책벌레였는데, 그는 생전 60,000권이 넘는 도서를 소장했고 또 그의 도서는 버킹엄 궁전의 홀 하나를 꽉 채울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고 합니다. 조지 3세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를 승계한 조지 4세는 버킹엄 궁전을 레노베이션 하면서 방대한 양의 도서 컬렉션을 전부 영국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아마도 조지 4세는 아버지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찌 되었건 왕실에서 기증받은 조지 3세의 도서 컬렉션으로 영국 박물관에는 왕의 도서관(The King's Library)이 탄생했습니다. 

19세기 영국 박물관 내부의 왕의 도서관

방대한 도서들과 함께 19세기 영국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계몽의 시기 탐험가와 수집가들의 귀중하고 신비한 물건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킹스 라이브러리에 전시했습니다. 큐레이터들이 물건을 보고 분류를 나누는 방식은 이 시기 영국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킹스 라이브러리는 계몽시기 서양에서 세상과 자연 그리고 인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계몽의 방에 있는 기증자들의 흉상과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

계몽의 방(The Enlightenment Gallery)은 7개의 테마로 소장품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종교와 의례, 무역과 발견, 고고학, 예술과 문명, 세계의 분류, 고대의 경전, 그리고 자연 세계로 나누어진 계몽의 방은 19세기 영국인들의 호기심과 연구 활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계몽의 방은 19세기에 구성된 전시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2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영국 박물관의 외형은 지속적으로 변해왔습니다. 하지만 킹즈 라이브러리가 위치했던 영국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관은 1823년 첫 증축 이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박물관에서는 계몽의 방을 새롭게 재편하면서 나무 바닥부터 천장 장식까지 19세기 원본 그대로 복원했습니다. 19세기 킹즈 라이브러리와 비교했을 때 계몽의 방의 전시 작품은 조금 바뀌었지만 조지 3세를 상징하는 천장의 무늬나 250년이 넘은 오크나무 바닥까지 그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계몽의 방 전경

영국 박물관에 가면 영국 박물관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첫 번째 전시실인 계몽의 방에 꼭 들려보도록 하세요, 역사의 숨결 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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