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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Park May 24. 2020

초보운전자의 드라이브 코스

내가 면허를 79,500원에 딸 수 있었던 이유

나이가 30먹도록 나는 운전면허가 없었다. 삶을 사는 데 있어 가성비를 중요하 여기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동은 언제나 비용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운전보다는 대중교통이 낫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도시에 살아서 그렇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엄마 아빠가 언제나 대신 운전을 해줬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어릴적부터 엄마 아빠가 픽업 해 주는데 버릇이 들어버렸다. 나이 30먹은 지금까지 부모님은 바쁜 일이 없으면 언제나 나를 픽업해주신다. 그래서 더 면허를 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내가 회사를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달라졌다.... 한국에서 살면서 서울과 이렇게 떨어져 살긴 처음이었고, 수도권의 너무나 편한 대중교통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제멋대로인 지방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30분에 한번씩 오는 버스가 사실이라고...? 점점 운전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던 와중, 아빠가 새 차를 샀다. 이전에 타던 차를 중고차로 팔려고 했지만 가격을 너무 후려쳐 나와 동생들의 운전 연습을 위해서 오래된 차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당시 거의 20만키로를 탄 붕붕이.. 원래도 중고차로 사서 오래된 차이기도 했지만 워낙 아빠의 손이 안간 곳이 없는 차라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아빠의 정성을 듬뿍 받은 붕붕이

미국에서 학교를다녀 고등학교 때부터 면허가 있었던 동생들은 자유롭게 차를 끌고다녔다. 하지만 운전을 할 생각도 안했던 나는 처음부터 면허를 따야했다... 사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서 기능까지 땄었다. bbk와 차를 팔아 먹기 위한 수단이라고까지 이야기가 돌며 이명박 대통령 시절 기능시험은 말도안되게 쉬웠다. 그냥 한바퀴 돌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기능을 따도 그 당시에는 내가 언습할 수 있는 차가 없어 도로주행을 연습을 못하니 그대로 1년이 지나버렸다. 이번엔 달랐다.

주행연습과 도로주행 시험 중 깜빡이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

1. 평생 한번만 들어도 된다는 재미없는 시청각 운전교육은 2012년 2013년인 한번 들어서 됐고,

2. 신체검사는 회사 채용 직전에 받아놔서 됐고,

3. 필기는 앱으로 공부하며 가장 도덕적인 답을 고르니 됐고, (7,500원)

4. 기능은 유툽으로 공부하여 T자주차 공식을 외우니 됐고, (18,500원)

5. 문제는 도로주행이었다.... (25,000원)

도로주행은 일단 부모님과 연습했다. 연습은 순탄치 않았다. 바퀴 휠도 깨먹었다, 가는데만 60만원 가까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 영향을 받은 범퍼는 살짝 나와있다) ... 첫 시험을 봤다. 떨어졌다. 끼어들기는 정말 힘들다.. 두번째 시험을 봤다. 붙었다! 야호! 도로주행 두번 50,000원 + 기능 18,500원 + 필기 7,500원 + 발급비 3,500원 총 79,500원에 면허를 땄다!

투쟁의 흔적인 영수증! 드디어 나도 면허를 땄다! 이제 국가 공인 신분증이 3개!

사진이 없어서 20살때 사진을 제시했는데 받아주더군..

면허를 따니 도로주행 연습할때보다 더 도로에서 운전하기 힘들었다. 주행연습 학원을 등록할까 하다가 부모님이 주행연습을 봐주시기로 하셨다.


작년 말부터 오늘까지 엄마 아빠와 운전연습을 하면서 부모님의 끝없는 사랑을 느꼈다. 나는 어릴때부터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이 내 일에 간섭하는게 싫었고 그게 부모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갈때도 대학원에 들어갈때도 마찬가지였다. 학비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대학, 합격장 드리밀고 부모님께 학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과를 결정하거나 앞으로에 일에 대한 상의는 뛰어넘었다. 대학교때부터 과외를 뛰며 용돈을 벌었고, 대학원은 스스로 학비를 마련했다. 나는 엄마아빠의 자랑스러운 큰딸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모든걸 알아서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가끔 주시는 용돈은 마다하지 않았지만...


혼자 주도적이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 손바닥 안에 있었다. 부모님의 조용하지만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혼자서 다 컸다고 생각하는 큰딸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서 엄마 아빠에게 운전을 배우는게 엄마 아빠는 너무나 재미있는것 같다. 스타벅스 DT에서 커피를 사서 3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걸려 오는게 그렇세 웃기다고 한다. 나이가 30이 되어도 자식은 아직 애기같아 보이는게 부모인것 같다.


오늘 엄마와 함께 나의 베프까지 동반하여 집에서 1시간 반정도 걸리는 서산 용비지로 드라이브를 갔다. 내가 운전해서 가본 가장 먼 거리!

나의 운전을 많이 경험해본 엄마는 많이 늘었다며 안심했지만, 내 차에 처음 타본 친구는 불안해서 죽을뻔했다고 한다 ㅋㅋㅋ 정말 못미더운 나에게 마르지 않는 신뢰를 갖고있는 우리 엄마 아빠...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사람 둘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용비지는 정말 아름다웠고, 근처로 찾아간 꽃게탕집은 가격에 못하는 맛이었다. 하지만 운전연습 덕분에 엄마와 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엄마는 나와 내 여동생이 어릴 때 자기의 딸들이 자기보다 키가 작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의 두 딸들은 다 엄마보다 키가 작다. 그래서 더욱 애기같을 수 있을 것 같다.


면허를 따고 운전연습을 하면서 나는 부모님에게 다시 어린아이가 됐다. 아직 평행주차같이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다. 내가 차에 관해 이것 저것 물어볼때마다 아빠는 신이난다. 부모 앞에서 자식다운 것도 나름 효도가 될 수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운전해서 부모님 그리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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