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물은 영화화의 대성공으로 인해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마블 스튜디오의 <아이언맨> 이후로 슈퍼히어로물의 중심은 코믹스에서 영화로 이동했다. 슈퍼히어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쏟아지자 마블과 DC는 신규 독자의 유입을 얻어낼 기회로 여겼지만, 하나의 세계관으로 수십 년 이어져 왔다는 특징이 오히려 높은 진입장벽이 되었다. 여기에 두 회사의 대처 방법은 사뭇 달랐다.
영화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마블은 대외적으로는 코믹스와 영화는 별개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영화의 설정을 가져와 부분적으로 코믹스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취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멤버 구성에 맞춰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다거나, 영화 <앤트맨>에서처럼 초대 앤트맨이었던 행크 핌에게 딸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코믹스에서 파생된 영화가 다시 코믹스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마블의 성공 덕에 더불어 관심을 얻게 된 DC는 기존 세계관을 중단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리부트(reboot, 컴퓨터 재부팅할 때의 그 재부팅이다)’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전에도 종종 사용해왔지만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이전까지의 세계관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애로우>, <플래시> 등의 TV 슈퍼히어로 드라마들을 성공시켜 ‘애로우버스’라는 통합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마블에게 자극받아 성급하게 뛰어들었던 영화화 작업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점차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마블과 DC라는 거물들의 사이에서 꾸준히 작품을 내는 중소형 출판사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이들은 새로운 슈퍼히어로 콘텐츠를 찾는 영화제작자와 방송관계자들의 좋은 표적이기도 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의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다크호스 코믹스와 밸리언트 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사들이고 모바일 및 디지털 플랫폼 등 코믹스 산업의 지식 재산권 관련해서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이미 다크호스 코믹스의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리즈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고, 밸리언트의 <블러드샷>도 소니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출판사의 다양한 슈퍼히어로들이 제작 중이거나 제작 예정에 있다.
과거의 인기작을 연상케 하는 제목이나 잊힌 캐릭터처럼 친숙한 요소를 집어넣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세다. 오래된 캐릭터나 사건을 다시 불러오는 일은 오랜 독자에게 반가움을 준다.
DC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혀 다른 세계인 <왓치맨>의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옛 세계관과 현재 리부트된 새로운 세계관을 연결시키는 시도를 했다. 이는 판매량의 증가로 이어져 성공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마블은 한동안 중단했던 <엑스맨> 관련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고, 죽거나 은퇴했던 히어로들을 하나둘씩 복귀시켰다. 캡틴 아메리카는 다시 백인 남성인 스티브 로저스가 되었다.
이 같은 처방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냉정한 독자들은 과거의 인기에 기대보려는 속셈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외면했다. 과거의 히트작 제목을 따온 DC의 <히어로즈 인 크라이시스>와 마블의 <시크릿 워즈>는 용두사미식의 전개로 인해 혹평을 들었고, <시빌 워> 십 주년을 기념한다며 내놓은 <시빌 워II>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
이제까지 소개한대로 현재 슈퍼히어로물은 다양해진 서사와 인물, 영상화, 복고, 디지털화로 나아가고 있다.
이중 어떤 것은 방향이 수정될 것이고 어떤 것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영상매체와의 결합이 큰 시너지를 낸 것처럼 다른 분야로의 접목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영화의 성공이 계속 이어지는 한 지금의 인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