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 10월 인생 첫 마라톤 10Km를 완주하였다. 기록은 1시간 2분. 안타깝게 1시간 언더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운동과 담을 쌓고 사는 나로서는 엄청난 성과이자 위로였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게 언제였을까? 역설적이게도 숨이 헐떡거릴 정도로 나를 괴롭게 만드는 달리기는 내가 가장 괴로웠던 인생의 한 시점에서, 살기 위해 시작했던 것 같다. 어쩌면 모기에 물려 부풀어 오른 살에 손톱으로 십자가를 찍어내 듯 고통을 고통으로 잊기 위함이었을까? 평생을 저체중으로 살아왔고 몸을 크게 움직인 일이 없던 내가 10Km를 1시간 만에 뛰어 낸 것은 그리하여 눈물 나게 감동적이 일이었다.
이후로 나는 달리기를 지속하고 있다. 달리기는 이제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기분이 우울할 때, 화가 날 때, 찌뿌둥할 때 나에게 '이리 와 어서! 같이 달리자!' 외쳐주는 든든한 형제 같다. 결국은 달리기가 나에게 준 건 기대했던 건강함 보다 더 커다란 것이었다. 정신적 충만함.
나는 5Km 길 위에서 매 초 나 자신과 싸우며 인생을 배운다. 그 짧은 30분의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동네에서 조깅하는 어느 아낙네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나 자신과 싸워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신기하게도 매일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과 함께 나는 나 자신을 정립해 나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