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늦었다.
박명수옹의 띵언을 실감하는 날들이 많았다. 스물아홉에 영국대학원 지원을 결심하고 나서, 전공교수님한 분으로부터 얼굴을 모르는 학생의 추천서를 써주기가 막막하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말투로 말씀하시니 더 상처가 되었다. 시간이 안된다고 말씀하셔도 되는데 바빠도 할건하는데 너를 몰라서 못해주겠다. 아는 분에게 연락해보거라...
일 년만 더 일찍 준비할걸, 한국에 있을 때 인사라도 해놀걸.. 이런 차원의 후회가 아닌 것이다. 자그마치 최소 7년에서 10년전으로 돌아가서, 교수님 중에 한 분만이라도 친분을 쌓아놀걸. 주전공이 심리학은 재미로 공부하고 복수전공에 꽂혀서 열심히 했는데 그러지 말걸. 바로 이런 말도 안되는 과거가정법. 그러나 실은 내 전공인 심리학은 최소 50에서 100명에 육박하는 학생대형강의가 전부. 강의는 무조건 주입식. 조별과제있더라도 레포트 제출이 전부. 그래서 난 오히려 복수전공을 했던 언론학과 교수님과 친분이 있었다. 물론 복수 전공으로 진로를 정해놨기에 주전공을 부전공처럼, 복수전공을 주전공처럼 여기며 생활했다. (덕분에 심리학과 졸업시험도 두 번이나 떨어졌다)
늦게 꿈을 찾아 가려는 사람은 시작도 말아야하는건가요? 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을이니까.. 그리고 오죽 부탁하는 애들이 많을까 이해하면서도. 하지만 결국 문제는 일희일비하는 나. 나도 가야할길이 너무 멀어보여 반신반의하는 길이라 더 주눅이 들었던 거다.
그래. 거창하게 꿈 얘길 할것도 없다. 그냥 좀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대체 뭘 할 수 있나요? 이건 그 교수님이 아니라 그냥 이 사회의 불특정다수에게 던지고 싶은 말. 시작부터 넌 안돼 라고 '다시' 낙인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너무 간이 작은거 아니야? 소심하기는.
아니?
나는 내가 그동안 겪은 일들에 비하면 잘 버텨내고 있는 거다. 돌고 돌아 공부할 과목을 결정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제일 간단해야하는 관문에서부터 막혀버리다니.정말 어느 하나도 자신있는게 없는데 이걸 하는게 맞는걸까?
그리고 결국 어떤 너그러운 교수님 덕분에 추천서 한 장을 더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세 번째로 지원한 대학원의 합격 통보를 받았고, 눈물 콧물로 점철된 과제와 발표와 2년의 실습과정을 겪고, 락다운 된 영국에서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집안에 웅크려서 논문을 썼으며, 마감 일주일전에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하여 과제연장까지 받았고 한달뒤에 논문을 제출해서 통과를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뒤 영국에서 6개월 더 체류하려던 계획을 수정해서 한국으로 영구귀국했다. 코로나가 심한 영국보단 한국에서 뭐라도 더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웬걸.. 나는 한국과 영국의 음악치료사 인정 기준이 다르다는 걸 "잘" 몰랐던 거다. 한국엔 통일된 공식 음악치료 기준이란 없지만 공신력 있다는 자격과 대학원 과정은 대부분 미국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덕분에 나는 500시간여를 더 다른 곳에서 인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우여곡절끝에 이제 나는 음악치료사로 불리울 수 있다. 그런데 삼년 전에 그 고민이 다시 또 나를 찾아 온다. 내는 이력서마다 줄줄이 연락이 없을 때, 면접에 갔는데 "이것저것 많이 하셨네요" 라는 말만 들을 때, 비슷한 경력이 없냐는 질문을 받을 때 말이다. 경력을 쌓을 기회를 줘야 경력을 만들죠.... 여전히 세상은 잔인하다.
조금 좌절하지만 쉽게 좌절하지 않기로 한다. 2년 동안 맷집이 조금 생겼고, 3년 전의 고민이 무색하게 된 것처럼 늦어도 다른 길이 있을 거라는 믿음. 아직은 그 믿음에 기대보기로 한다. 이 글을 읽는, 조금 늦은 것 같은 기분에 슬픈 당신에게도 그런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우리 모두 조금 더 버텨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