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 이란 책을 아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책장에서 보고 제목만 보고 뽑아들었다.)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마음과 부적 감정에 대해 솔직히 쓴 글을 모아둔 것인데 계속 읽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서문에서 눈길이 갔다.
트리거 워닝이라는 제목의 서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힘든 책이다. 재미있고 기쁨이 넘치는 부분도 있고 슬프고 가슴이 미어지는 부분도 있다. 모든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정신건강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장단점을 중점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읽기 버거운 글돌도 있다. 여러분이 이 책을 탐색하는 데 이 트리거 워닝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트리거 워닝이란, 어떤 콘텐츠를 공개하거나 내용을 알리기 전에, 그 내용이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것을 미리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드라마를 방영하기 전에, 다소의 폭력적인 장면이 있음을 알린다거나, 성적 학대에 대한 내용이 있다면 미리 경고문을 부착하는 식일 것이다. 이정도는 우리에게도 친근한 수준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트리거 워닝은 조금 더 세심하고 긴밀하게 이루어졌다. 에딘버러의 한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정신건강의 여러 범주를 배우고 토론하던 수업이었다. 어떤 비디오를 보기 전에 교수가 먼저 이야기한다. "이러한 내용이 있고 몇 분 정도 보게 될 것이다. 혹시 개인적인 이유에서 보기 힘든 내용이라 판단되면 수업을 잠시 나가도 좋다. " 영상이 시작되고 한 두 명 정도가 교실을 조용히 나갔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안내받은 트리거 워닝 같지 않았다. 유혈이 낭자한거나 아주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단순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정도로?"
나는 다른 세상에 와있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알게되었다. 트리거 워닝은 유난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배려다. 트리거워닝의 동의어는 이런 거다.
너와 나의 고통을 체감하는 정도는 다르다
너의 과거와 나의 과거는 다르다
너의 과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나는 너를 존중하고 최대한 안전한 공간을 제공할 선택을 너에게 준다.
치료사가 치료사가 되기위한 훈련을 받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세심하고 당연한 일들을 보며 나는 조금씩 조금씩 성장했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트리거 워닝이 한국에서도 잘 정착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