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사로 산다는 것
영국에서 음악치료 실습 마무리를 이 주 정도 남겨놓고 있던 날이었다. 물론 아름다운 마무리는 갑자기(?) 우리의 일상속으로 눈치없이 껴들어버린 covid-19 덕분에 원하던 마무리와는 다른 방향이 되어버렸지만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하던 어느 날. 유튜버 관종언니(구 이지혜님)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트는 나의 꿀잼코스) 나만의 고민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프로그램 두 개가 날아가고 청취율 조사도 좋지 않아 자존감이 바닥이라고 하는 그녀에게, 그녀의 남편은 일에서 자존감을 찾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그녀의 말,
"나는 뭐가 문제일까?"
이 말은 최근 두 달 간 아니, 지난 일년 간 나를 가장 괴롭혔단 말이었다.
클라이언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아프다, 다른 스케줄과 겹쳤다, 피곤하다 등) 음악치료세션에 오지 않는 날,
한 번 온 클라이언트들이 다음부턴 내 세션에 가지 않겠다고 여러 번 스탭들에게 말했다는 사실이 슈퍼바이저를 통해 나에게 전달됐던 날,
겨우 음악치료실에 도착한 클라이언트가 헬로송만 듣고나선 다시 자신의 플랫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어떤 날...
등등등..
꾹꾹 참아내고, "Don't take it personally. It's him"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마, 그냥 그 사람 때문이야) 라는 말을 여러 사람들에게 들어야만 아주 조금 참아지던 날들.
한 클라이언트가 여러 번에 걸쳐 음악치료를 다신 하지않겠다고, 나조차도 보고싶지 않다고, 그래서 그가 있는 복도에는 아예 가지 않는게 좋겠고, 실은 그 주에 내가 클라이언트에게 인사를 잠깐 하러 들렀던 그 날, 그 클라이언트가 소동을 일으켜 어항을 깼고 키우던 금붕어를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난 캔디형이라 정말 잘 울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수퍼바이저에게 한 이 말, "What I have done wrong? "
나는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무엇 때문일까?
또 다른 수퍼바이저는 굉장히 냉정한 톤으로 말했다. 나는 이제 네가 조금 걱정되기 시작한다고. 답을 너에게서 찾으려 하지 말고, 관심을 클라이언트에게 더 돌리라고.
처음에는 비정하다고 생각했던 이 말이 아직도 이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나에게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던 게 사실이었다.
부러 하지 못한 클라이언트들에 대한 정보.
그들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성인들이다.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산다고 치부되는 사람들. 특히나 여기 있는 성인들은 거의 평생을 이런 시설을 집처럼 여기며 살았고, 각자의 트라우마와 순탄치않았던 유년시절 등.. 여러 변수들이 합쳐져 우리가 볼때는 아주 사소한 변화, 사소한 일에도 적응이 힘든 경우가 많다.
분명 "무엇"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쏘아올린 어떤 작은 공이 촉발했을 수도 있을거다. 어항을 깼던 그 클라이언트도 만약 내가 그가 오지 않은 그날 오후 그의 플랫으로 쪼르르 달려가 안부를 묻고 다음주에도 음악치료는 하니까 오고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늘 하던 그런 reminder를 하지만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괴로움을 느끼며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반성과 성찰 그리고 슈퍼비전을 통해 조심해야 할 일들을 다음번에 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된 거다. 계속해서 괴로워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치료사"의 숙명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모든 세팅을 good enough(충분히 좋게) 하게 지켜냈다면 내 할일은 여기서 끝이다. 그 이상의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일주일에 한번씩 병동의 의사, 간호사, 케어러, 심지어 나같은 음악치료사 실습생들이 모인 Multi disciplinary Team meeting 에서도 늘 이런 얘기들이 오간다. 수많은 공부를 자기분야에서 해낸 사람들도 머리를 싸매고 서로 의논하고 서로의 지식과 관점을 나누어야 그들을 위한 가장 베스트의 (치료아닌) 케어가 이루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해주면서.
그래서 나는 어떤 부분에선 포기하고, 어떤 부분에선 더 노력해야한다는 자명한 논리를 또 다시 배운다.
놀랍게도 나를 울게만들었던 클라이언트는 그 다음주에 마음을 바꾸었고, 알고보니 장소가 조금 멀어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전문가들의 추론을 통해, 나는 그의 플랫 바로 앞에 있는 공간에서 음악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또 다른 클라이언트는 몇 주 간의 나의 집요한 초대에 매번 웃으며 "next time!"을 외쳤지만 결국 더이상 권유조차 하면 안될 것 같다는 담당 간호사의 조언으로 나는 세션을 종료했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personal (개인적으로) 이 아닌 professional (직업적) 로 받아들이게 된 걸 보면 새끼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작은 성장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한국에서 프리랜서 음악치료사로 활동한지 두 달. 그때의 진리는 여전히 통한다.
모든 (소망하는 바를 위해 공부하는) 유학생들에게 동지적 응원을 보내며..
모든 (진심으로 일하는) 치료사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