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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다다 Apr 11. 2021

나는 어떤 음악치료사가 될 것인가.

첫 학기, 두 달 간의 지난한 오리엔테이션과 신분 확인 절차가 끝났다. 스코틀랜드에서는 PVG(Protecting vulnerable groups) Scheme 을 반드시 작성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 사람의 5년 간의 주소 기록과 범죄사실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런 것들이 끝나고 나는 스코틀랜드 근교에 위치한 한 양로원 nursing에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두 달간의 관찰이 끝나고 나는 단독으로 세션을 진행할 수 있는 실습생이 되었다. 대부분 각 실습처에는 practic educator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른바 실습장의 감독관 (수퍼바이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는 어떤 종류의 시련을 겪을지 결정된다. 저마다의 철학이 다르고 배우고 걸어온 길이 다르다. 음악치료사가 수퍼바이저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병원이라면 의사, 학교라면 교장 등등 전혀 결이 다른 일을 하는, 그러나 내담자를 케어한다는 측면에선 비슷한 직업군이 나에게 첨언을 하고 나의 세션을 감독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고 학교의 담당 교수가 나에게 말한 것. (That's bonus!) 문제는 나의 수퍼바이저가 꽤 삶을 즐기며 사는 (laid-bakc style) 중년의 음악치료사였다는 것. 그는 나의 세션에 대해 정말 사소한 부분만 관여했다. 첫날에만 함께 했을뿐 나를 독립적인 음악치료사로 존중해주었고 녹음해논 세션과정도 막판에 내가 한번 권유했을때 들었을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오롯이 매시간 세션 전과 후에 스스로 세션을 책임지고 동시에 평가하는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무거운 고민들을 안고 학교에 가면 5명정도로 구성된 피어 수퍼비전 그룹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세션을 그 사람이 진술하거나 녹음해논 것을 함께 듣고 함께 그 고민을 나눈다. 


나의 고민은 늘 비슷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이 사람이 나아질 수 있을까? 


나의 클라이언트는 90세가 넘는 여성이었는데 노화가 되었을 때 사람에게 찾아올 수 있는 질병들을 가지고 있었고 신경정신과적인 어려움으로 약도 처방받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나서 알 수 있는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에 취해 보낸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조금 연주해도 될까요? 로 시작되는 나의 질문에 그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유연하지 않은 몸을 휠체어에 지탱한 채 그는 음악이 연주되고 불리는 그 장소에 있었다. 음악치료는 그의 개인실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우리 둘만 그곳에 일어나는 모든일의 당사자이자 증인이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과연 그녀도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매 시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았다. 처음으로 홍차를 실은 트롤리가 그녀의 문 앞에 멈춰섰고 간호사가 나에게 잠시 그녀에게 차와 비스킷을 줘도 될까 물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그녀가 입술을 열어 말을 하고 그 말이 꽤 크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나는 그녀가 눈을 감은채 내가 부르는 노래의 구절을 희미하게 따라하는 광경을 보았고, 어떤 날은 그녀가 나에게 고맙다고 웃는 모습도 목도했으며 (오래 일한 간호사들도 보지 못한) 느리더라도 계단식의 발전을 기대했던 그 다음 주에는 잠에 깊게 취해 눈을 뜨지조차 못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세션을 단축해야했다. 어떤 날은 놀라움으로, 어떤 날은 무력감으로 나는 세 달의 시간을 보냈다.


어찌 치료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일에 목표 및 목적 달성과 결과가 등한시될 수 있을까. 그러나 구순의 내담자에게 나는 감히 어떤 목표를 세울 수가 없었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할 수 있는것?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것?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두터운 세월을 살아온 이 여인의 어떤 하루의 짧은 시간이 그저 그녀의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잠시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랬을뿐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거라고? 별거 아니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라고? 음악치료에서는 그것이 위대한 일이고 인정받고 관심받아야 하는 일이 된다. 처음 나에게 이 내담자를 배정한 나의 실습 수퍼바이저에게 나는 의문을 가졌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내담자가 나와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욕에 넘쳤던 아시안 만학도의 기를 꺾어놓은 이 스코티쉬맨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덕분에 나는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제 어느 양로원에나 있는 힘없고 조용한 할머니가 아닌,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고 핑거브레드를 좋아하며 마라카스를 흔들곤하는 사람으로 기억 될 것이라고. 그리고 나와 함께 한 그 시간들이 그녀에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시간과 감정을 그녀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나는 과정(process) 보다 눈앞에 보이는 결과( result)를 의지하며 대부분의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많은 이론과 음악적인 기술을 겉핥기로 배워도 꼬박 2년이 걸리는 코스를 끝내고 이제 막 프리랜서 음악치료사가 된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건, 내가 배우고 들은 상당수의 지식들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 2년의 길지 않은 시간에도 나는 음악을 통한 과정의 힘을 믿게 되었다. 다른 임상치료사들과는 다른 접근, 다른 시각, 다르다고 믿는 누군가가 내는 아주 작은 소리, 들리지 않는 그 몸짓까지 듣고, 그 옆에 있어주는 일이 귀하다는 생각, 듣기( listening), 증인이 되기(witnessing) 의 힘에 대한 확신만 움켜쥘 수 있다면, 그 중심만 놓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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