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비아 Jun 12. 2020

퇴사일기 마지막. 퇴사 4년차의 돌아보기

퇴사일기 마지막 페이지

뭐? 벌써 퇴사한 지 4년이나 되었다고?
햇수로 6년을 다닌 전 직장은 내게 많은 걸 주었다.
대단한 인센과 복지를 누린 건 아니었지만
대기업답게 좋은 대우를 받으며 다녔고,
회사 이름과 직급이 떡하니 박힌 명함이 곧,
내 얼굴이었고 자존심이었다.

직무 특성상 정말 다양한 기업들의 직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내가 미팅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결정권자인
차, 부장급의 높은 직급이었다.
친구가 다니는 기업과 미팅을 한 후
“나 오늘 이 분 만났어” 하면,
회사 안에서 나 같은 짬밥이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 할 만큼 높으신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과 명함을 주고 받고 미팅을 하노라면
마치 나도 그 정도의 직급인 양 높아진 기분이었다.
이 정도의 성취감과 자존감은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나 어딘가 모르게 휑함이
내 속을 후벼 파는 일이 종종 생겼다.

‘내 청춘 여기에 이렇게 다 바쳐서 뭐가 남았지’
‘나는 매일 행복을 느끼고 있는걸까’

잦은 야근과 업무 스트레스로 생긴 불면증은
내가 내 인생을 잘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줬고
한 살이라도 젊은 내 청춘을 온전히 내 의지대로
내 맘대로 실컷 보내고 싶었다.
퇴사를 했을 때 후에 후회할 양과
퇴사를 안 했을 때 후회할 양을 비교해보니
지금 하지 않았을 때의 후회의 양이 더 컸다.
왜 하필 꼭 그 때여야만 했느냐면,
워킹홀리데이의 제한이 만 30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퇴사 후 계획은 ‘유럽에서 살아본다’ 하나 뿐이었다.
어떠한 예산도 일정도 잡지 않은 채,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몇 천만원이 들어 있는 통장 잔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
삼십 평생 돈과 시간을 다 가져본 최고의 자유였다.
하루하루만의 계획으로 유럽 곳곳을 누비며
아무 생각 없이 살아 본 4개월,
슬슬 잔고 걱정이 생기던 2개월,
돌아가서 뭐할까 고민하던 2개월.
돌아와 다시 월급쟁이가 되느냐,
자영업자가 되느냐 고민하던 4개월.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난 사장님이 되었다.
대리에서 사장이라니 대단한 승진이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고연봉의 대리에서 무일푼의 사장.
자리를 잡기까지 정말 고달픈 시간들을 보냈다.
그 시간들이 어연 3년이 흘렀다 한다.
3년간 정말 갈팡질팡한 시간들이 많았고,
여전히 그러하다.


퇴사를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
8시가 이른 아침으로 느껴질 때
은행, 병원 업무를 맘껏 볼 때
늦잠을 실컷 잘 수 있을 때
친구들이 업무, 상사 스트레스를 받을 때

퇴사를 후회할 때
돈이 궁할 때
돈이 궁할 때
돈이 궁할 때
.....

생각해보면 재정적 문제 외에
퇴사를 후회한 적이 없는 듯 하다.
그만큼 퇴사 후의 내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퇴사를 하자마자 유럽의 여유롭고 급박함 없는
삶을 느껴봐서 그런걸까.
이 급격하고 빨리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그걸 유지하기가 굉장히 힘들지만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살지 않는 건 아니다.
회사 다닐 때와는 다른 치열함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기가, 그리고 심지어 후배가 무려
난 이제 만나지도 못하는 대기업 과장님이 됐을 때,
아, 나도 과장은 달고 퇴사할걸 싶다가도
빠르게 태세 전환이 되곤 한다.

너는 과장이냐 나는 사장이다 라는 자부심으로.
실제로 이 자부심은 어디에 써먹지 못하는 것이
함정인데, 예전 같았으면 손쉽게 컨택할 수 있던
어느 기업의 담당자를 정말 감히! 컨택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단 게 현실이다.
회사의 이름을 떼 버린 나는 정말 힘없고
단촐한 개인에 불과했고 이러한 현실이
나 스스로 퍼스널브랜딩을 확고히 하자는 의지에
강한 불을 지폈다.


내가 하는 자영업이 불티나게 잘 되어
돈 궁할 일 없이, 퇴사 후회할 일 없이 살면 좋으련만
후회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문제다.
사실 작년 하반기부터 이 정도면 안정됐다! 생각해 재정 문제 또한 점점 사그라지는 시기였다가
갑작스러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굉장한 타격을 입고 있는 중이다.



직장인 vs 자영업자


월급이 제때 들어온다.
vs 월급이 없다.

열심히 일해도 안 해도 똑같은 수입
vs 열심히 하면 할수록 많아지는 내 수입

내 업무만 잘하기
vs 멀티로 모든 업무 다 알기

정해진 출퇴근 시간
vs 내 맘대로 출퇴근

알게 모르게 누렸던 소소한 복지
vs 아무도 내게 주지 않는 서비스

점점 좁아지는 우물 안 개구리 시야
vs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안정
vs 불안정

코로나로 많은 기업들이 어쩔 수 없는 파산을 하고
채용도 없어지는 시점인 요즘인지라
직장인이 꼭 안정적이라고는 볼 수도 없는 현실이다
하물며 자영업자는 어떻겠는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깜깜한 미래를 손에 꼭 쥐고
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이슈를 두고
4년 전 나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묻는다면
난 여전히 퇴사를 한다 쪽이다.
물론 퇴사 이후는 좀 더 계획적인 삶을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드라마처럼 평행세계가 있다면,
퇴사를 하지 않는 내가 그곳에 있다면,
4년 전 퇴사를 하지 않은 것에 얼마나 후회를 할까.


회사원이었던 6년의 시간.

이제 안녕.

퇴사일기 끝.


4년 전, 2016년 6월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일기 82. 그는 왜 안정된 직장을 차버렸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