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하의 독립운동을 하는 한국 청년을 사랑한 일본 여인의 마음
拝啓(はいけい, 하이케이) 경진상(慶振さん)
신록이 푸른 5월이 끝나가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모처럼 산책을 나섰다 우연히 발견한 과자점에서 오래전 같이 걷던 경성 거리에서 당신이 사주었던 유과를 보았습니다. 그때의 경성 거리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우리만은 한없이 더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약속시간보다 2시간 더 지나서 헐레벌떡 다방으로 뛰어온 회색 양장을 입고 있던 당신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금도 전혀 바래지지 않고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합니다.
당신을 볼 수 없던 긴 시간 동안 편지를 쓸까 몇 번이고 펜을 들었지만, 항상 텅 빈 종이만이 책상 위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어떠한 말을 써야 할지 내면에서 휘몰아치고 둥둥 떠다니며 헤엄치던 표현들이 고요한 새벽을 빌려 지금에서야 펜으로 쓰이네요. 이제야 용기 내어 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약혼은 저의 요청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학교 동무들과 처음으로 다방에 갔던 날, 조선어로 신나게 얘기하는 한 무리의 남자들 사이에서 당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은 몰랐던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자 제 마음에 당신이 들어온 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처럼 선 굵은 당신의 얼굴이 좋아서 마음에 들어왔다 여겼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생김새보다는 열렬히 무언가를 쉴 새 없이 말하는 이들 사이에서 묵묵히 상대의 발언을 듣고 대답하는 당신 모습이 좋았던 거 같습니다. 그때의 저는 소리 내어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가문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로 태어나 큰마님의 눈을 피해 경성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학교에 갈 수 있어 동무를 사귈 수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나의 목소리를 아무에게도 들려줄 수 없었으며,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께서 칭찬을 해 주시던 꾀꼬리 같이 부른다는 나의 노래도 부를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저 조용히 숨죽여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당신은 무언의 제 목소리를 들어줄 거라 생각했었던 거 같습니다.
이후 저는 당신을 보기 위해 다방을 갔습니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오후가 당신 친구들이 모이는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당신이 안 오는 날이면 조금 서운하였지만, 친구들의 대화에서 당신의 근황을 들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당신이 이상(李さん)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생애 처음으로 욕심이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신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욕심. - 누군가는 꿈(夢, ゆめ)이라 말해줬지만, 저는 욕심이라 부르겠습니다. - 처음 갖게 되는 감정이 참 강렬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날이었습니다. 책에서 읽었던 '열병과 같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심히 공감되었습니다. 당신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자신이 참으로 경이로웠습니다. 이런 나날을 보내었기에 경성에 일이 있었던 아버지께서 제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생애 처음으로 용기 내어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은 일방(一方)이 아닌 쌍방(雙方)으로 해야 하는 것을 이때의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일방적인 나의 마음이 당신을 이토록 힘들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집안의 억압을 피해 은밀히 조선독립운동을 해 왔던 당신에게 저와의 결혼은 또 다른 종류의 압제이자 폭력이었겠지요. 내가 기억하는 당신이라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괜찮습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겠지만,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겠지요. 저는 그 여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결혼 예복을 맞추러 가던 길에 순사가 끌고 가던 키가 껑충한 여자. 제가 당신을 보러 갔던 다방에서 일하던 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모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종로경찰서에 가서 신원 보증을 서고 어느 여인을 데리고 나왔다고요. 혼인을 앞두고 당신 집안에서는 쉬쉬하였지만, 소문은 제 귀에까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나를 보러 찾아온 당신이 그저 우리의 혼사에 대해 물어봤기에, 저는 소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그저 당신과 혼인을 하게 된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떠나 상해로 가. 내가 가는 배편과 신분증은 마련해주마. 도착하면 동지들을 찾아가라.
이전 날에 당신이 건네주었던 손수건을 미처 돌려주지 못해 대문을 나선 당신을 따라 급히 뒤따라 나오다 예상치 못한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상해. 동지.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자 순사에게 끌려가던, 당신이 신원 보증을 서 주었던 그 여인이 생각났습니다. 조선인이 종로서까지 끌려갔다는 것은 조선독립운동을 한다는 의미이며, 몇 년 전 신문에서 보았던 슌보 공(春畝公, 이토 히로부미를 뜻함) 시해 사건을 비추어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나라의 발전을 가져다준 일본인을 증오한다는 사설이 떠올랐습니다. 나지막이 여인이 훌쩍이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벙쩌서 얼어붙어 있던 그 시간 동안 엉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하다 조선독립운동을 하는 당신에게 일본인인 나와 혼인을 치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되물어 보았습니다.
소혜에게 당신 몫의 표와 신분증을 전달한 사람은 저입니다. 일방적인 저의 마음으로 증오하는 일본인과 혼인을 진행해야 했던 당신에 대한 미안함이라 여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냐 물으신다면, 나의 대답은 '당신마저 목소리를 잃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상해에서는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칠 수 없는 편지이기에 답장은 받지 못할 거 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길 바랍니다.
東京(とうきょう, 도쿄) 雅子(まさこ, 마사코) より
인어는 예전부터 아름다운 목소리로 선원을 홀려 배를 바다에 침몰시키는 전설로 내려옵니다. -인어공주 초반부에 이 전설이 언급됩니다.- 막내 공주는 다른 인어 언니들처럼 왕자를 목소리로 유혹하여 침몰시켜 수장시킨 후 소유할 수 있었지만, 그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며 왕자의 삶을 지켜줍니다. 마사코는 일제 고관의 서녀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조선인 경진과 정략결혼을 진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며 경진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상해로 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헤어짐 이후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인어공주 원작처럼 마사코 또한 첫사랑이 지나간 후에도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