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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Dec 04. 2021

뭘 믿을 거예요?

편견을 바탕으로 시청자에게 되묻는 드라마 멜랑콜리아

커다란 극장 화면을 가득 채우던 바다 위의 향연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절로 탄성을 자아내며 반짝이는 눈으로 바다 위 보트의 한 소년과 거대한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영화의 마지막, 중년의 파이가 이야기를 마치며 짧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의료진은 내가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한 자기 보호로 미화된 기억이라 한다. 사실이 무엇인가 보다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사실로 믿음이 가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인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였다.


피곤한 주말에 시간 때우기용으로 드라마 한 편을 재생했다. 제목은 멜랑콜리아. 특혜 비리의 온상인 학교로 새로 부임한 교사가 자신을 숨기던 수학 천재 학생을 만나며 나누는 교감을 다루는 이야기. 드라마 주제를 보고서 바로 과거의 트라우마로 수학을 외면하며 살아가던 수학 천재 승유(이도현 분)가 자신을 다시 순수한 수학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선생님 윤수(임수정 분)를 사랑하게 되는 로맨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시청자의 반감 또한 바로 상상되었기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내용을 풀어낼까 주안점을 두었다.


나의 짐작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남주가 여주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졌으나 학생만이 아닌 그들의 학부모, 교사, 정재계 인사들까지 얽혀 만들어 내는 사학 비리에 대한 거대한 카르텔이 있었다. 특정 학생에 대한 특혜 비리의 낌새를 알아차린 윤수가 이를 바로 잡으려 진실을 알아갈수록 이에 대한 탄압과 멈추라는 약혼자의 만류가 있었지만, 점점 안하무인으로 행동해 가는 예린(어른들의 비리로 특혜를 받는 학생)이 위태로워 보여 멈출 수가 없었다. 교사인 윤수에게 특혜를 받는 예린도 수학 천재인 승유도 모두 소중한 학생이었다. 성적에 따라 급을 나누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친구에게 협박조차 서슴지 않는 동급생들과 학교의 명성을 위해 문제 유출 및 온갖 특혜를 눈 감아주는 어른들로 둘러싼 세계에서 그저 숨죽이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소년은 수학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자신이 맡은 학생이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을 하는 존재를 마음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 품게 되는 사랑의 감정은 주변 상황과 상대에 대한 배려 등을 전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하게 만든다. 소년 역시 자신조차 조절할 수 없는, 스스로를 감아버리는 열병 같은 마음이 흘러넘쳐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승유의 마음은 많은 이들이 겪었던 학창 시절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같은 반 규영이처럼 자신이 관심 갖는 예린이가 자주 승유를 바라보는 눈길을 알아채고 승유를 괴롭히기 위해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을 같은 반 친구들이 알게 하고, '백승유가 지윤수 쌤 좋아한대.' 이 가벼운 한 마디로 소문나서 한동안 수다의 안주거리로 입방아를 떨다 잊힐 수 있었다.


점잔 빼고 매너 있게 대화하지만 뱀처럼 노련하게 원하는 것을 물어 삼키는 어른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예린의 특혜 의혹이 기사화되고 실체에 접근하는 윤수로부터 학교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교무부장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드는 루머를 만들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돌려버리고, 사회 지도층인 학부모를 움직여 여론을 조정한다.

'서울 한 사립교에서 일어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여교사와 남학생'

그동안 무수히 봤던 인터넷 기사의 자극적인 제목이다. 그 밑에 달리는 교사를 욕하는 댓글들. 짐을 챙겨 나가는 선생을 향해 비난하는 학부모들. 동시에 온라인에서 내려진 예린에 대한 특혜 비리 관련 기사들.

학생이 순수하게 품었던 마음과 '부적절한 관계'로 명명된 자극적인 기사 중 나는 어느 것을 더 사실이라 믿었을까? 오래전 영화를 보며 받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현실에서도 역시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교사와 학생의 로맨스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시청자가 많아 기사화되었다. 제작진, 작가, 출연 배우들 또한 예상했으리라 여겨진다. 그 불편함을 전제로 작품은 시청자에게 되묻는다.


드라마는 이번 주부터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였다.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어 과외도 하고, 클럽도 가고, 학교 홍보 모델도 하며 20대의 삶을 만끽하지만, 승유는 혼자 정장을 입고 나이 지긋한 교수님과 동등하게 대화를 나누는 어른이 되었다. 지윤수 선생님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던 그날을 기점으로 승유의 유년기는 남들보다 빠르게 막을 내렸다. 자신을 무력한 미성년자로 만들었던 시선에 맞서기 위한 사회적 위치를 갖기 위해 정장을 입고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승유의 모습이 아주 슬프게 느껴졌다. 다시 누릴 수 없는 20대의 청춘의 시기를 건너뛰어면서까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승유의 뼈아픈 후회를 어느 누가 쉬이 알 수 있을까.


승유와 윤수가 연인이 될지 여부는 전혀 궁금하지 않으나 이후의 이야기가 계속 보고 싶어 진다. 그동안의 작품 진행을 봤을 때 어설픈 정의구현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변하는 현실감 있는 전개가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이 루머로 인해 가장 상처를 받았던 윤수의 전 약혼자 성재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아물었으면 한다. 시간의 약이 아닌 다른 위로로.


사족으로 내용의 논란이 있을만한 드라마를 선택한 임수정 배우님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다. 물론 좋은 각본을 쓰시는 작가님과 아름답게 연출하는 피디님을 믿고 선택하신 거라 믿지만, 대중에 노출되는 배우로서 시청자의 곡해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감수하신 용기는 배워야 할 마음가짐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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