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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Apr 30. 2023

메트로 폴리탄 시티즌을 위하여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 - 길 위에서

좀전에 먹었던 점심이 얹힌 듯 가슴이 답답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쫓기는 사람처럼 게눈 감추듯이 급히 먹다 이리 되었나 보다. 가슴 속 답답함을 누르고자 따라 걷던 눈 앞의 길이 끝나는 곳, 전체적으로 깔끔한 디자인으로 중간에 테라스가 보이는 건물, 구름 없이 청명한 하늘 아래 허드슨 강의 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휘트니 미술관에서 나는 예고없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마주하였다. 빛 바랜 색체와 군더더기 없는 선으로 채워진 캠퍼스. 단조롭고 메마른 퍼석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바라보면, 여행자로서 마주한 뉴욕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가장 오랜 시간 그의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인파를 따라 걷다가 답답함에 지쳐 유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을 올려 볼 때 눈에 들어오는 회색 건물들과 대비되는 청량한 하늘로 숨통을 틔곤 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 틈틈이 티켓 예매를 검색했다. 얼리버드 티켓은 오픈 당일 매진이 되었고, 뒤늦게 예약 앱을 뒤적이다 딱 하루, 비어 있는 1자리를 후다닥 예매하였다. 고대하던 관람일, 예약 시간 5분 전에 전시관에 도착하자 눈 앞에 있는 기나긴 줄의 끄트머리에 합류하여 시간에 맞추어 입장하였다. 유모차를 끌고 어린 아이와 함께 나온 부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멋쟁이 여성, 나처럼 편안하게 에코백을 메고 혼자 와서 티켓과 인증샷을 찍은 젊은 남자분, 꽁냥꽁냥 입맞추는 젊은 커플. 모두들 그의 그림을 고대하고 있었다. 


관람 순서는 2층, 3층, 1층의 순이었고, 지하 1층에 무료 보관함이 비치되어 있어 짐을 놓고 관람을 시작했다. 입장 시 나누어 준 팜플렛이 두툼했다. 호퍼의 삶의 궤적을 8개의 주제로 나누어 전시관을 나누고 작품들 외로 중간중간 영상실과 호퍼 부부가 관람하며 모은 연극 티켓, 호퍼가 생계 유지를 위해 작업했던 일러스트들도 전시되었다. 난 처음으로 젋은 시절의 호퍼가 파리에서 체류한 적이 있어 그 때 감성을 살려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시절의 그림은 파스텔 톤으로 햇살의 반짝임과 풀잎의 싱그러움이 느껴져서 내가 아는 그림과 너무 달라 놀라웠다. 이후 선이 강조된 판화 기법 에칭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이 시절 작품의 선이 향후 그림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게 되었다. 날카롭고 치밀했으며, 촘촘하게 자세히 묘사하는 방식은 이후 뉴욕을 그릴 때 단순하지만 날이 서 있고, 밋밋해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매우 디테일하게 스케치 되어 채색되었다. 아내 조세핀의 영향으로 수채화로 뉴잉글랜드 풍경을 종이에 담았는데, 바다와 돌, 사구와 창고를 담은 작품을 보면 자연이 주는 차분함이 호퍼 특유의 공허한 화풍과 어우러져 가보지도 않은 미국의 목가적 풍경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수많은 관람평에도 써져 있었고, 나 또한 아쉬웠던 부분은 호퍼의 대표작을 볼 수 없었다. 이번 전시는 휘트니 미술관과 연계하여 개최되었기에 시카고 미술관에 있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윌리엄스버그 브리지로부터’ 두 작품은 한국으로 오기 힘들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기획자 또한 아쉬운 듯 전시 구성에 열과 성을 쏟아부었다. 호퍼에 대한 헌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생애를 연구하여 시간 순이 아닌 작품 활동의 변곡점에 맞추어 주제를 정하고, 유화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에칭 판화, 수채화 작품까지 내어 놓았으며, 심지어 호퍼가 주고 받은 서신들과 생계를 위해 작업한 삽화들까지 모아왔다. 작가에 대한 거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휘트니 미술관 창고를 싹싹 긁어모아 온 많은 사료 스케치, 작품들이 어느 봄날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녁 땅에서 전시되고 있다.     


나의 그림은 ‘Soir bleu’ (푸른 저녁)이다. 

저 멀리서 볼 때부터 이것이 명작이구나 라는 감탄이 나왔다.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 강가 야외 식당 테이블에 앉아 있는 새하얀 광대 분장을 한 이가 담배를 물고 있다. 주변 배경과 인물 모두 어둑하지만, 오직 그만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무시, 조롱, 외면을 받으면서도 웃음을 짓는 영화 속 조커가 연상되어 그의 고립감, 외로움이 느껴졌다. 이 그림에서는 당신만이 밝게 빛나는 주인공이기에 지금 이 순간만은 공허하지 않길 바란다. 

호퍼의 그림에는 도시인의 고독이 담겨있다. 인간 근원적 존재론이나 삶의 의미 부여가 아닌 그저 부지런히 몸을 놀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커다란 도시 한 귀퉁이에 몸 뉘일 작은 공간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문을 나서는 노동자, 예술인의 고단함이 보인다. 특별하지 않아서, 작은 개미와 같은 일개 무명인이라 부스러지기 쉽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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