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현주 Aug 30. 2020

바랄 걸 바라야지

거대 목표 사절 계기

그 요란 뻑적지근한 연애사건 때문에 나는 나이도 들기 전에 ‘바랄 걸 바라라,’ 하는 극히 요령 있는 세상 대처 법을 배웠다. 요란했다고는 하나 아무도 몰랐거나, 알았다면 연애 대상자로 찍혔던 상대만 기겁한 사건이었다. 아니 한 명 더. 상사병에 골골거리는 나를 돕겠다며 그 작자에게 현주가 널 좋아한다더라, 고 머리꼬리 다 자르고 말을 전했던 빌빌한 선배. 자기 자신도 내 친구를 혼자 좋아 죽던 때라 무슨 봉사 활동하는 숭고한 시민처럼 나를 위해 나섰던 것이다. 이건 뭐 과부 사정 홀아비 건도 아니고


덩치가 컸다. 당당한 어깨를 흔들며 대다수 남자를 위에 내리꽂아 보는 신장이다 보니 젊은 내가 그 구시대 세상 남자들 눈에 들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아주 흉물은 아니었다고 감히 말하는데 뼈 마디와 마디 사이가 긴 늘씬한 골격에, 먹어도 살이 붙지 않는 체형을 타고났다. (가끔 이 부분에서 조물주께 은근히 감사한 적 있음.) 그런데 성질머리가 이상해 외모를 잘 가꿔야 여자라는 통념이 기분 나빴다. 여성성을 내세우는 것에 반발, 변변한 화장도 아니하고 그 작자를 쫓은 것이다. 간도 크지, 청바지 두어 벌에 운동화 꺾어 신고 80년대 대학 교정을 휩쓸고 다녔다.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운동권 투사도 아닌 주제에. “나는 현주를 동생으로 생각했을 뿐…”이라고 짝 상대가 말했단다.


사랑을 못 이뤄서 슬픈 게 아니라 자존심이 상해서 머리를 찧었다. 내가 말하려고 시작한 사랑도 아니고,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도 몰랐다. 그냥 도서관에 가면 어디 있나 눈이 돌아갔고, 그가 들어오는 정문은 더 넓었으며 그가 걷는 복도는 빛이 나더라. 참 잘 생겼었다. 유일하게 정수리를 못 본 남자다. 어지간한 남자는 내가 머리 가마를 다 봤다. '이 놈은 가마가 삐뚤군,  저 놈은 가마가 둘이네...' 그의 가마는 못 봤으니 참 키가 컸던 게다. 그 빌빌 이선배는 왜 나서서 수선을 떨어 이미 너덜너덜한 자존심을 걸레로 만드냐 말이다. 이로써 상상 연애사건 급마무리.

그 후 ‘바랄 걸 바라라’ 전략을 굳히기 한 계기는 부자 염탐질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의 삶은 쪼잔하고 초라한데 부자들 무리에 섞이는 일이 많았다. 의도치 않아도 불려 갔고, 가서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게 잘 사는 사람들. 손바닥만 한 앞치마와 머리띠인지 두건인지 걸친 하녀를 실제 본 적 있는가?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그 직업군 사람 둘이 실제 문 앞에 나란히 서있는 집도 가봤다. 집이 두 채가 연결돼 한 집에서는 손님을 맞는 평범 소박한 집이나 사실 거실 안 쪽 문을 제치면 다른 한 채가 또 있어 그 안은 식구들의 금빛 안식처인 집도 가봤다. 길에서 보면 그냥 다른 두 집인 것이다. 각자 출국해 하와이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곤 했다. 학교 근처에 주차장이 있어 거기는 자가용 등교하는 그들 만의 리그가 존재했다. 물경 80년대에.


목표가 너무 높으면 지레 포기하는 법. 너무 멋진 인기 남자를 좋아해 봤자 내 차례는 안된다는 걸 학습, 연예인을 안 따르는 자. 닿을 수 있는 선을 넘는 재력을 우연찮게 염탐해 부자가 되는 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조기에 포기한 자. 나는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걸 따진다. 허황된 것, 진이 빠지게 달라붙어도 될둥말둥한 목표는 잡지 않는다.  뭔가 하려면 만만한 걸 찾으며, 혹여 귀가 얇아  버거운 것에 매달렸다가도 여차하면 포기가 빠르다. 이건 아닌 거야. 바랄 걸 바라야지.


작가의 이전글 글이 써진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