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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예 Jul 25. 2020

짝사랑 실패기

마이크임팩트 골든마이크 2020 대본

다들 기억에 애틋하게 남는 사랑을 해보셨나요?
저는 오늘 '실패한 사랑'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여러 사랑 중에서도 짝사랑에 관해서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 경험이 여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주었기에, 꼭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좀 힘차게 살았는데요.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 인생의 주인공은 저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자기 계발, 동기 부여 강사가 흔히들 건네듯 네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은 너다.
인생을 살아지지 말고 살아라. 따위의 말 있잖아요. 저는 그 말의 교과서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전요. 삶에 있어서 자기 계발에 가장 숭고한 뜻을 두고,
사람이 태어났으면 큰일을 해야 한다는 에너지로 가득 찼습니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에는 독하게 공부를 했고
대학생 때는 1학년 때부터 대외활동 지원서를 썼습니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하다 보면 될 것 같았어요.
여행도 다니고 알바도 하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고 싶었던 저는 365일 중 360일은 밖에서 보낼 만큼 다채롭게 20대를 채워 나갔습니다.
저에 집중했고 그 자기 계발 덕에 '쓸 건 많은' 학부 시절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런 점만 보면 참 좋지요. 명이 있으면 암도 있겠죠.
저는 작은 행복, 소확행 따위 관심 없고요. 결과를 중시하다 보니 남의 감정은 생각도 잘 안 했습니다.
나와 다르게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을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렸고 이해를 잘 못했어요. 정확히는 이해할 필요 없어서 안 했죠. 제 속에는 은근한 자의식 과잉도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이 짝사랑을 경험하지 않은 채 이 무대에 섰더라면, 이런 제 삶을 자랑하듯 떠벌렸을 겁니다.




이런 사람이 태어난 지 이십 년도 훌쩍 넘어서
첫사랑을 시작하는 청소년기도 아닌
동기나 선배와의 썸으로 가득 찬 신입생도 아닌
20대 끝자락에, 처음으로 내 모든 걸 다 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놀부 같던 제 맘을 뺏은 그분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분은 자낳괴(자기계발이 낳은 괴물...)인 저와는 완벽히 다른 사람이었는데요.
딱히 가진 건 없었어요. 사회에서 치켜세워주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온 걔는 맨날 이런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여러분들은 이 손가락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대문 사진 참고)
이게 샤카라고 하는 수신호입니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문화입니다. 이 수신호로 인사부터 감사, 사랑, 우정, 이해 등 모든 긍정을 다 말할 수 있어요. 뜻은 좋아, 천천히 해, 나 별일 없어, 괜찮아, 릴랙스. 이후엔 서핑족들이 많이 전파했어요. 위험천만한 파도 속의 서퍼들이 멀리서 수신호를 보내는 거죠. 괜찮아? 응! 나 괜찮아~. 이 친구는 이걸 수시로 해대더라고요. 언제나 실실 웃으면서 모든 게 괜찮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옷은 늘 어디서 주워온 중고 의류만 입는 사람이었는데도 늘 당당했어요. 그 자신감 덕에 입고 걸친 게 명품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보통 몸이나 얼굴이 멋있는 거 아니냐 하실 텐데 제 눈에는 멋있었어요. 당연히 제 눈에 콩깍지일 수도 있고요.

사람은 참 비합리적이고 사랑은 머리로는 설명이 힘들어요. 저는 어느 순간 이상한 포인트에서 빠져버립니다. 여태 한 번도 그런 방식대로 살아 본 적이 없는데 그 인간의 편안함에 빠져들더라고요. 전혀 치열하게 살지도 않는 그 사람. 지금까지의 제 기준에 한참 미달인 사람임에도 말이에요. 저는 조금씩 그 사람의 방식을 따라 했습니다. 늘 명랑 발랄한 아이돌 노래만 들었던 제가 그로 인해 처음으로 잔잔한 음악을 들어 봤고요. 바깥 활동을 많이 하던 제가 집 안에서 사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짝사랑을 사랑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에요. 기본적으로 연락도, 표현도 엄청 많이 했어요.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라이벌이 있는 것 같아 윙맨도 써보고요. 비슷한 취미도 공유하고 같이 서점도 가고. 또 저를 한껏 꾸몄습니다 성형외과에서 상담도 받아 봤습니다. 어디를 넣어야 할지... 겉과 속의 저를 바꾸려고 했어요. 심지어는 회사도 나가지 않았죠. 그 친구와 조금이라도 더 있기 위해서요. 그 사람과 만나는 동안 저는 저를 완전히 내려놨어요. 

그 시간 동안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했습니다. 잘 되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안됐습니다. 제가 그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었어요. 이후에 그 친구는 제가 견제하던(?) 다른 사람과 잘 된 것 같습니다. 확실치는 않아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됐는지. 결국, 한 계절의 짝사랑은 결과로만 보면 실패로 끝났어요. 하지만 그 사랑의 과정 속에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며 깨달은 세 가지가 있어요.
처음으로는 공감의 감정이 커졌어요. 

남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여태까지 누군가를 아는 것은 많이 해봤는데요. 인생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생기니 그 사람의 세상을 깊이 알고 싶었어요.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한 사람을 이해하려 해 보았죠.

이 사랑 이후부터는 슬픈 영화를 보거나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를 듣고 가사가 좋다는 명곡을 들으면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다음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됐습니다.

그 사람을 연구하며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뿐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럼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에서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생겼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 인생이 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사랑만큼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많이 알려준 경험은 처음이더라고요. 그를 거울 삼아 저를 보니... 

제가 좀 급하더라고요.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완벽한 게 없다는 거요.

사람은 다 불완전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실패기에서 멋지게 묘사한 그 사람에게도 단점은 있었습니다. 어차피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같이 보완해가는 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참 안 바뀝니다. 안 바뀔 거예요. 저는 여전히 도전하며, 그는 여전히 쉬어가는 삶을 살겠죠. 나는 그런 편안함을 찾고, 누군가는 열정을 또 찾기도 하겠죠. 그래서 어쩌면 이 사랑으로 깨달은 불완전한 내 삶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시에서 그런 말을 봤어요,


 나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놓아야 그 물이 조금이라도 오지 않겠느냐고.



저는 한 계절 동안 그런 사랑을 했습니다. 사랑을 하는 동안 한없이 미천해지며 그 속에서는 참 다른 세상이 보이더라고요. 또 다른 의식을 깨워 준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그 사람 같은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그 사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더 좋은 만남도 할 수 있겠죠. 





202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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