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난 너처럼 못해. 요스비: 뭘? 아내: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커뮤니티를 만들어? 요스비: 내가 파고 싶은 분야를 섭렵하려면 관심 있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야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아내: 뭐여. I 인 나는 이해 못함. 요스비: ㅋㅋㅋ 그러게, E에게 유리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아내: 그리고 무모해. 아주 무모해. 요스비: ㅋㅋㅋㅋㅋ ㅇㅈ
너, 내 동료가 되어라.
경매를 공부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
예전부터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기 위한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누군가에게 '나 이 분야 섭렵할거야!' 라고 알리고 함께 할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관심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학습과 성장에 시너지를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공부한 것을 자료화하고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그 과정에서 나만의 인사이트가 쌓이고 스터디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까지 깨뜨리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SNS 브랜딩과 마케팅 공부와 경험은 덤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기획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때(이전 글 '프로덕트의 시작은 고객의 목소리' https://brunch.co.kr/@01nanum/9참고),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늘 만들어내고 싶었다. 신혼이었던 아내와의 행복한 여행의 시간, 게임처럼 일할 수 있는 여유로움 등을 누리고 싶었다. 그렇게 부동산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부동산을 공부하며, 책을 읽고 임장을 다니며 정리한 콘텐츠를 블로그에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몰랐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일하게 될 줄은...... 콘텐츠들이 포트폴리오가 될 줄은......
적극성은 전문성보다 차별화된다.
부동산 투자 콘텐츠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위한 부동산과 자산배분 운용하는 회사의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했다. 그 회사는 경제적 자유를 위한 부동산, 주식, 연금 자산을 운용하게 도와주는 통합 플랫폼 회사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비장의 무기 '적극성'을을 가지고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어느 날, 서포터즈 내에서 회사의 SNS 운영과 콘텐츠 작성에 대해 도울 수 있는 보조 인력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보조인력이 된다면 평생 공부하기로 마음 먹은 경제적 자유의 분야를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바로 덕업일치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단순 알바 정도의 인력을 채용하는 것 같았지만, 한껏 나를 드러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서 기획자로서의 이력을 전달하였다.
결국 전공부터 현재까지 다른 분야의 직업적 특성을 가진 사람임에도 회사에서는 나를 채용했고, 이직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다. 부동산 도메인에 대한 이해는 있었어도, IT 프로덕트의 기획 경력은 전무한 신입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회사와 함께 프로덕트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열정을 보여주는 일이었고, 간절했던 것 같다. 간절함과 적극적인 태도는 +1 을 만들어낸다.
사회복지사였던 나는 2년만에 IT 프로덕트의 PM(product manager)로 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