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은 채 개발하고 팔아야했던 그 순간의 치열함을 기억한다.
나: 국가 과제 연구했던 거 기억나?
아내: 연구원 됐다고 좋아했던거?
나: ㅋㅋㅋ 맞아. 그 직함이 되게 멋있어 보였어.
아내: 그 때가 옆에서 본 모습 중에 제일 힘들어 보였어. 옆에서 걱정 많이 했었어.
나: 정말 어려웠어. 나조차도 납득이 되지 않는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것...... 제품 사용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던 것 같아.
독서를 통한 '수'가 나를 커리어 전환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하게 해주었지만, 새롭게 맞이한 이 세상은 야근과 주말 근무의 투쟁을 불사하는 곳이었다. 나는 이 회사에서 제품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하는 국가 과제 연구 기획자로 서비스 기획자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불려지는 '선임 연구원'이라는 뿌듯한 직함은 뜨거운 투쟁 속에서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 이야기는 내가 기획자의 커리를 시작하면서 '고객의 목소리를 제품에 반영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해준 첫 번째 이야기다. 프로덕트가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 있어보이는 직함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기업의 생사를 위한 기획을 하고 있었다.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함이 아닌 인건비를 벌어오는 문서 작업하는 기획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 대표님은 실무형 리더십을 증명하고 있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실무와 비즈니스는 달랐다고 생각한다. 실무는 일이지만, 비즈니스는 고객과의 소통이었고 고객을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야했다. 실제로 국가 연구 과제를 통해 과제에 맞춰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다보니, 행동하게 할 고객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고객 니즈 반영과 뾰족한 핵심 기능 개발이 없다 보니, 나조차도 납득이 가지 않는 물건을 좋은 물건이라고 판매해야 했다(내가 사기꾼이 된 것 같았다). 고객 니즈 반영과 뾰족한 핵심 기능 개발이 없다 보니, 세일즈 포인트가 제품 그 자체가 아니었다. 세일즈 포인트가 점점 프로덕트와 멀어져갔다. 구입하는 지자체 수장과의 관계, 이해관계자와의 업무 협약 등으로 제한되었다. 점점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국가 연구 과제를 안하면 될 일 아닌가 라고 반문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 연구 과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회사가 투자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사업력이 11년 넘은 회사이기 때문에 스타트업으로 인정 받지 못했기에 투자 받을 기회가 적었다. 국가 연구 과제만이 직원들의 인건비가 나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었기에 해당 과제를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과연 기업의 생사를 위한 기획을 했을까? 무엇이 기업의 생사를 위한 기획일까?
물론, 기업의 상황에 따라 단기적인 열매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업의 생사를 위한 기획은 '고객을 위한', '고객의 목소리를 반영한' 기획이었어야 했다. 미래 산업 발전을 위한 미래 지향적인 제품 개발이 목적이 아닌, 우리 고객이 제품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어떤 욕구를 충족받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했다. 열심히 달려들었던 문서 작업이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단기적인 열매가 악습관으로 길들여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목소리 한 번 내보지 않았던 기획자로서의 첫 커리어는 국가 과제 8개와 함께 고스란히 불태웠다.
이 때의 경험이 나에게는 새롭게 시작한 커리어의 여정에서 하나의 잊지 말아야할 기준점을 세워주었다.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고객'을 선으로 하여, 끊임없이 반복되는 트랙을 달리는 기획자의 모습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