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2003, 소피아 코폴라 作
언젠가 방학의 일입니다.
영화를 봤어요. 남자랑 여자랑 시내 돌아다니면서 싸우고 놀고 기대고 그러다 헤어지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때 전 중학생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뭐 이런 것도 영화라고 만들었나 생각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 영화가 외로움을 다뤘다는 걸 몰랐던 거 같아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로맨스 영화 흥행 법칙에 의해 로맨틱 코미디처럼 번역된 영화이지만 잘 번역했다고 생각해요.
여행 좋아하시나요? 저는 별로 안 좋아해요. 여행을 가려면 계획을 세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귀찮거든요. 그리고 저는 여행이 좀 환상에 의해 부풀려졌다는 생각도 했어요. 특별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고요. 그건 물론 제가 여행의 묘미를 모르기 때문이겠지만요.
같은 맥락으로 여행에서의 사랑을 다룬 영화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만약 고국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래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아닐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여행지라는 특수한 장소를 영화가 정서적으로 잘 이용한 거라고 봤다는 거죠. 사랑에 대한 부풀림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이 영화도 일본이라는 장소를 잘 이용한 거 같아요. 일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국인 둘이 만나고, 그 둘은 때마침 외로운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이 잘 통하게 되는 거죠.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니까요. 그래서 위로를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나도 당신과 같다, 이런 뉘앙스를 묘하게 풍기면서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남녀가 그러니까 에로스적인 사랑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민과 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요. 둘 다인 거 같기도 해요. 사랑은 에로스적인 것과 아가페적인 것이 모두 포함되니까 둘 다가 맞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일반 여행지에서의 사랑 영화보다 깔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뭐일까 생각해봤는데요. 직접적인 스킨십 장면도 없고, 격정적인 대화가 없어서기도 하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마지막 장면 때문인 거 같아요. 둘의 대화를 우리가 들을 수 없다는 점이요. 그래서 감독이 되게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과잉되면 자기 연민의 성격을 띄니까 그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텐데 둘의 대화를 우리가 듣지 못하게 하면서 그걸 차단해버렸으니까요. 아니면 마땅한 대사가 생각이 안 나서 그냥 관객한테 여지를 주겠다고 핑계대고 얼렁뚱땅 넘어간 걸지도 모르지만요.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해봤어요. 일단 저는 그때만큼은 감정이 격한 상태였을 거 같아요. 이 사람이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욕심났을 거 같고요. 이 사람이 나를 잊지 않는다면 나는 이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내가 덜 외로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인 거라고 착각했을 거 같아요. 그런데 또 꼴에 점잖은 척은 하고 싶고 그랬겠죠.
그래서 이렇게 말했을 거 같아요. 우리가 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남들이 말하게 두지 말아요.
그러니까 저는 결국 사람이 타인을 이용해서 자신의 외로움을 지우려고 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타인과 외로움을 나누는 행동은 서로를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하는 식으로요. 건실하게 사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떻게 생각하세요? 둘은 마지막에 무슨 얘기를 한 걸까요?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 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유리의 존재, 김행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