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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둥대는금붕어 Jun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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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피터 손, 2023

(스포주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태생으로, 누군가는 직업으로 스스로를 규정짓는다. 전자는 윗세대에 만연한 방식이고 후자는 현세대의 방식에 가깝다. 영화 '엘리멘탈'은 그 간극을 원소설로 풀어나가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물론 각각의 원소는 미국으로 들어온 이주민들을 비유한 것이지만.


불 속성 주인공 '앰버'는 아버지의 가게 '파이어 플레이스' 후계자로 야망이 있고 다소 욱하는 성질을 지녀 스스로 계승의 시간을 늦추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녀의 목표는 이 가게를 물려받는 것이었으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을 거의 배웠지만, 약간의 불찰로 시청 직원 '웨이드'에게 가게의 허술함을 들키고 영업 정지 위기에 처한다. 안 그래도 화가 많은 앰버는 가족이 그토록 경멸하고 - 그들을 이주하게 만든 - 물 속성 '웨이드'를 닦달하지만 웨이드는 그런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앰버도 곧 웨이드의 유한 성격에 끌리지만 이들을 가로막는 것은 출신, 즉 정체성이다.



앰버의 아버지는 이사를 오기 전 물에 모든 걸 떠나 보냈고 가족에게조차 외면받으며 엘리멘트 시티로 그의 아내와 딸만을 데려왔다. 이곳에서조차 불은 꽃 한 송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차별당하고 그는 물과 타 원소에 대한 적의로 가득하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출신에 한정하고 보수적으로 가족을 지킨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고 계승을 바라는 그에게 딸 앰버는 너무나 완벽한 후계자지만, 사실 그녀는 유리를 다루는 데 있어 뛰어난 재능이 있고 그녀의 성격 또한 가게를 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그녀의 욱하는 기질은 가게에서 히스테릭한 주인으로 발현되지만 유리 공예를 하는 데에선 끝없는 발전과 노력으로 나타난다. 아버지의 통제력은 다양한 손님을 대하는 가면을 쓸 수 있게끔 하지만 예상할 수 없는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앰버는 웨이드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확립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평생 당연시해왔던 것들을 받아들일지, 떨쳐낼지 고민한다. 부모님에게 부채감을 느껴 스스로를 희생하려던 앰버는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웨이드의 마음과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녀가 변화하듯, 그녀의 아버지도 앰버가 떠나는 길에 그녀의 인사를 받고 화답한다. 아버지에게도 자신을 부정하던 윗세대를 떨쳐내는 순간이다.



앰버가 이렇게 할 수 있던 건 웨이드의 몫이 컸다. 능청스럽고 사람 좋은 웨이드도 사실은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채 그를 떠나보내야 했다. 집은 유복하지만 목표가 없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던 그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은 앰버다. 물론 그 자신은 몰랐겠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저돌적인 앰버의 모습이 웨이드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앰버와 웨이드는 이제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전문가도 아니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지만 사주에서는 작은 촛불과 큰 물이 만나면 나무라는 성질로 변한다. 그리고 사주에서 나무는 '나', 즉 '정체성'을 뜻한다. (정임합목) 서로 반대인 줄 알았지만 손을 잡아보니 타는 것도 녹는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겪으며 변했다. 사실은 뻔한 얘기지만 그만큼 그들이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타인으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더 발전할 수도 있다. 그들이 고질적인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며 변화한 것처럼.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진짜 내가 있다. 그걸 알게 해주는 사람도 내 인생에 한 명쯤 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 감동적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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