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둥대는금붕어 Sep 03. 2023

추억의 애니메이션 '후르츠 바스켓'을 아십니까

후르츠 바스켓, 타카야 나츠키

욕망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어서 이해하기 쉽지만, 상냥함은 개개인이 손으로 만든 것과 같아서 오해받거나 위선이라고 생각되기 쉽단다.
의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란다. 토오루는 믿어주렴. 믿어주는 아이가 되는 거야.

그건 분명, 분명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거야.



 후르츠 바스켓은 완벽해 보이는 유키가 실은 십이지 중 하나인 쥐이며 십이지들은 이성을 안으면 동물로 변한다는 비밀을 토오루가 알게 되면서 다른 십이지들과 엮이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십이지들은 당주인 아키토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그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아키토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이들에게 내려진 '저주'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는 십이지들을 보듬어 주는 인물이 바로 토오루인데, 그녀는 거창한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은 때에 해주는 따뜻함이 있다. 그런 그녀 역시도 어머니를 잃고 애도하는 과정에서 유키와 쿄우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하면서, 언제나 인연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아야 상처받지 않을 수 있던 십이지들에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으로 자리잡게 된다. 구작 애니메이션은 26화를 마지막으로, 실제 원작의 6권까지와 7, 8권의 일부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실제 만화와 분위기나 인물 성격상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구작 후르츠 바스켓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각 에피소드별로 십이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과 (말과 닭을 제외하고), 이를 통해 보는 사람마저 치유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강점이다.


 특히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쿄우와 토오루의 에피소드인데, 고양이인 쿄우는 소마 가이지만 고양이의 혼령이 씌여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런 쿄우를 치유해주는 토오루를 본 쿄우의 스승은, 사람의 뼈로 만든 염주를 차지 않으면 괴물의 모습을 보이는 쿄우의 치유를 위해 염주를 벗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상처받아 도망치는 쿄우를 뒤쫓아가 주저 앉으면서도 돌아가자고 말하는 토오루를 보며 쿄우는 서글프게 중얼거린다. 너는 어째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걸까. 어째서 나를 위해 너 같은 애가 눈물을 흘려주는 것일까, 하고.


 만화에서는 후에 쿄우가 이때를 떠올리며 토오루가 사실 자기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토오루가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쿄우는 토오루의 찰나의 머뭇거림을 느꼈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견뎌준 사람이 평생 없었기에 그러면서도 자신의 곁에 있어준 토오루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것은 살면서 우리가 한번쯤은 느껴보는 외로움과 쓸쓸함과도 닮은 이야기이다. 내가 너무나 고독할 때, 그가 내게로 나타나는 마법 같은 이야기.


 번외로 슬펐던 것은 카나와 하토리의 이야기였는데, 하토리가 얼핏 보면 감정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태도를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제법 잔인한 일(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지우는 일)에 쓴 뒤 이따금 그녀를 떠올리고 그녀의 결혼 얘기에 쓸쓸하게 웃는 것이 무척이나 슬펐다.





후르츠 바스켓은 아이러니하게도 치유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독의 뒤를 따라오는 기쁨에 대한 묘사를 놓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기쁨,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사는 기쁨, 떠나보내야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충분히 느끼는 기쁨.... 슬픔과 기쁨이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후르츠 바스켓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무엇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1 + 1 =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