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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둥대는금붕어 Sep 08. 2023

한때 절친이 이젠 나더러 F급이라고 한다

성적표의 김민영, 2022

너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알 수 없는 불안. 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너가 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맞을 수도 있어.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 음… 그래도. 앞으로 뭘 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덜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너는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IMDB: 6.8/10
화제성: 3.0/5.0
대중성: 3.0/5.0 (고등학교 친구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는 걸 잘 살렸다)
내용 참신성: 3.0
키워드: 우정, 현실, 성격 차이
차별점: 예능 프로그램의 일부로 자막을 넣어 편집한 신이 등장하는데 참신했다

 

매일 같이 급식을 먹고 잠을 자고 공부를 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에 붙고, 누구는 해외로, 누구는 서울에 남아, 누군가는 지방으로 간다고 했다. 전공도 제각각이었다. 만나서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할 때는 더했다. 누구는 육아에, 누구는 맞선에, 누구는 MBA. 우정이나 애정은 삶의 목적 앞에서 너무나도 연약하다.


 민영과 수산나, 정희의 관계가 꼭 그렇다. 이들은 수능을 100일 앞두고 삼행시 클럽을 해체시켰고, 수능을 본 뒤로 완벽하게 저마다의 길을 가게 된다. 수산나는 미국 대학으로, 민영은 대구대, 정희는 테니스장. 삼행시 클럽은 줌으로 이어졌으나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민영과 시차에 버거워하는 수산나로 해체되었다. 고등학생 때처럼 해체를 선언한다는 성의를 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유일하게 대학에 가지 않은 정희는 마음 한 곳이 텅 빈 것 같은 공허를 느낀다.


 하루 머물다 가라는 민영의 말에 정희는 요란하게 짐을 싸서 가지만, 민영은 그런 정희의 짐을 보자마자 부담을 느끼고 표정이 바뀐다. 설상가상으로 편입을 준비해야 하는데 교수님이 주신 학점은 초라하다. 기껏 올라온 정희를 옆에 두고 민영은 성적 정정 메일에만 열을 올린다. 잠시 잘 노는 듯 했으나 민영은 기어이 직접 교수를 보러 학교에 찾아간다. 심지어 정희의 얼굴을 보고 말하기 무섭다는 이유로 메모 한 장만을 남기고.


 홀로 남겨진 정희는 민영의 일기를 읽으며 남몰랐던 민영의 고충과 감정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정희의 마음이 풀린 것은 아니다. 정희는 나름의 성적표를 민영에게 남기고 떠난다. 절대적으로 적대적이지도, 호의적이지도 않은 객관적인 성적표다. 둘이 어쩐지 관계를 이어갈 것 같지 않았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순간의 감정을 길게 늘어놓은 영화 같다. 현실적인 민영과 몽상가적인 기질이 있는 정희가 어떻게 찢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둘은 떨어질 수 없던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친구였던 것뿐, 그다지 잘 맞는 스타일 같지 않아 보였다. 민영의 말도, 정희의 말도 모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악의보다는 사회적인 예의를 갖춰 대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이 둘은 인생에서 가장 여린 시기를 함께 보냈기에 그렇게 사무적인 태도로 관계를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사실 마무리라는 것도 영화 속 민영과 정희만 알겠으나... 정희의 담담한 응원이 민영을 다소 멀찍이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가능성도 많고 시행착오도 많을 나이 스무 살이다. 민영과 정희는 각각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의 불편했던 하루는 앞으로의 시행착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서운함에 잠 못 자던 언젠가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3.0/5.0


THIS, TOO, SHALL PASS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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